에너지산업만큼 거시경제·외교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된 산업이 없을 것이다. 에너지 문제는 국제정치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국제사회에서 무력분쟁은 상당부분 에너지 문제에서 기인한다. 글로벌 경제와 정치는 향후 군사력 불균형이나 영토문제가 아니라 에너지와 담수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될 것이다.
에너지 전쟁은 미시적으로 에너지관련 기업들을 통해 수행된다. 민간기업이든 국영기업이든 에너지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터미널은 기업들이다. 국제정치의 커다란 조류와 에너지 관련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전략, 인수합병(M&A), 지배구조, 자금조달은 서로 연관돼 있다.
메이저들은 규모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소유가 분산될 수밖에 없다. 2008년말 기준 시가총액 1위인 엑슨모빌은 삼성전자의 약 7배 되는 회사다. '주주가치'라는 모토하에 경영진은 투자보다 주주에 대한 이익 환원에 치중하고 주가 관리를 위해 배당과 자기주식 매입에 치중한다. 성장과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 여력은 축소된다.
에너지 기업의 소유지배구조와 국가전략의 관련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러시아다. 푸틴 대통령은 에너지산업을 직접 자신의 통치력하에 두려고 한다. 2004년에 국영 천연가스회사인 가즈프롬에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트를 합병시키고,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신흥재벌 호도르프스키 유코스 회장을 제거한 후 유코스의 자회사 유간스네프테가즈를 가즈프롬에 인수시켜 사우디아람코와 같은 거대 국영 에너지회사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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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가스공급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유럽을 상대로 푸틴은 가즈프롬을 지정학적 전략도구로 활용한다. 경영진에 최측근들을 배치시켰음은 물론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가즈프롬 출신이다. 러시아 의회는 가즈프롬이 자체 병력을 보유하는 것도 승인했다.
국제여론이 악화되자 러시아는 중국과의 제휴로 그 무마를 시도했다. 2004년 10월 러-중 정상회담 후 중국의 CNPC에 유간스네프테가즈 지분의 20%가 양도돼 국제사회의 비난은 약화되고 미국은 견제 당했다.
우리나라의 국가발전전략 수립에도 에너지기업의 소유지배구조 측면의 고려가 충분히 포함돼야 할 것이다. 에너지 산업은 세계적으로 지난 30년전에 중동과 중남미에서 붐을 이뤘던 자원회사 국유화 과정과 유사한 정치적 환경하에 있거나 최소한 소재지국 정부의 강력한 영향력하에 놓이고 있다.
에너지생산국이 아닌 우리나라가 에너지산업을 국가전략으로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전략이 있다면 방어적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석유공사가 중국을 물리치고 페루의 석유회사를 콜롬비아 국영석유회사와 공동으로 인수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가 현재 국제조류에서 취할 수 있는 중요한 공세적인 움직임으로 높이 평가돼야 할 것이다.
사우디의 7%밖에 안되는 에너지국인 중국이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자원외교에 크게 성공하고 현지 에너지기업에 대대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이 정치적 부담이 없는 외국세력이고 중국 에너지회사들이 주주가치에 구애되지 않고 국가전략적 결정을 할 수 있는 국영기업들이기 때문임을 참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