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잇단 무죄... 잘못겨눈 '檢'

머니투데이 서동욱 기자 2009.02.1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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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수사 신뢰성 타격

기업인 잇단 무죄... 잘못겨눈 '檢'


칼날이 무뎌져서일까 지나친 공명심 때문인가. 검찰이 집중 수사한 대형 사건들이 법원에서 잇따라 무죄로 판단되고 있다.

새 정부 사정작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공기업 비리 사건에 이어 '거액의 배임 행위를 저질렀다'며 기소한 대기업 회장까지 무죄 판결을 받는 등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위법'을 찾아 단죄하는게 검찰 본연의 임무라지만 잘못된 기소와 무리한 법 적용의 피해는 고스란히 '피의자' 몫이다. 수천~수만명이 고용된 기업체의 경우 수만~수십만의 간접 피해자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부산지법 형사6부는 10일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동양메이저가 한일합섬을 인수하면서 피인수 회사의 현금성 자산 1800억원을 인수회사의 부채상환에 사용했고, 이는 한일합섬 주주와 채권단에 손해를 끼친 행위라며 현 회장을 기소했다.



검찰이 '징역 5년과 벌금 1800억원'에 해당하는 중범죄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죄가 안된다'고 판결했다.

합병 후에 피합병 회사의 자산을 처분하는 것을 배임죄로 볼 수 없고 "처음부터 한일합섬 자산을 탈취할 목적으로 합병이 이뤄졌다"는 검찰의 주장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무죄 판단의 주요 근거다.

이 사건은 공소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당초 검찰은 동양그룹이 한일합섬의 자산을 담보로 인수자금을 마련했다며 현 회장을 기소했지만 첫 공판에서 동양메이저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이 조달된 증거가 나오자 공소장을 변경했다.

법리적으로도 '무리한 기소'였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공기업 수사 일환으로 대검 중수부가 집요하게 들여다 본 석유공사와 해외유전개발업체 사건 역시 최근 줄줄이 무죄가 선고돼 '공기업 비리와 기업 범죄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자평이 무색해졌다.

에너지 전문업체 케너텍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군인공제회 김 모 전 이사장이 무죄를 선고받았고 중부발전 정 모 전 대표 역시 무죄로 판단됐다.

외환은행 헐값매각 및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서도 잇따라 무죄가 나왔고 이 과정에서 수사 검사가 재판장에게 `항의성 이메일'을 보냈다가 직접 판사를 찾아가 사과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채무 탕감 청탁과 함께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사건 역시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하면서 "문제 소지가 있는 업무는 피하는 게 낫다"는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까지 생겼다.

검찰은 무죄 선고가 날 때마다 증거 인정이나 법리해석에 대한 '법원의 잣대'가 너무 엄격하다'고 반응한다. 수사 환경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도 단골 메뉴다.

임채진 검찰총장의 취임 일성은 '고품격 수사'였다. 그는 "치약 짜듯이 기업수사를 하지 말라. 기업수사를 하다가 혐의가 안 나오면 바로 덮어도 좋다"는 등 지난 한해 검찰권을 신중히 행사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검찰총장의 이 같은 '하명'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게 분명하다.

혐의가 없으면 뺐던 칼을 다시 집어넣는 것이, 검사로서의 오점이 아닌 당연한 수순으로 인식되는 수사 관행이 검찰에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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