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현재현 회장, 경영공백은 누가 보상?

머니투데이 원종태 기자 2009.02.1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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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14일 이후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이른 아침에 김해공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한일합섬 불법 인수 혐의로 부산지법에서 열리는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4∼5시간의 공판시간을 감안하면 이동시간까지 꼬박 한나절이 소요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갈수록 심화되며 그룹의 경영환경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그룹 수장의 부재는 선고공판까지 여섯 번이나 이어졌다.



10일 열린 부산지법 형사10부 선고공판에서 현 회장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7월 이후 7개월간 진행된 강도 높은 수사에 대해 재판부는 "혐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실상 검찰의 공소 이유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처음부터 한일합섬의 자산을 탈취할 목적으로 합병이 이뤄졌다는 검찰의 주장은 증거가 부족하고, 합병 후 피합병 회사의 자산을 처분하더라도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합병 과정에서 동양그룹이 정보 대가로 돈을 건넸다는 혐의도 무죄를 선언했다.



◇7개월 수사 무죄..기업은 '무슨 죄'(?)

동양그룹은 현 회장의 무죄 판결에 대해 "당연한 결과"라며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다. 그룹측은 "검찰을 자극하지 않겠다"며 이번 무죄 판결 의미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꼈다.

그러나 그룹의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과정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검찰이 당초 수사에 착수했던 이유는 한일합섬 인수의 문제점으로 삼은 것은 LBO(Leveraged Buyout 차입매수) 방식이었다"며 "하지만 검찰은 수사 도중 한일합섬 인수에 문제가 없자 인수 이후 합병을 문제 삼는 등 공소 내용을 뒤바꿨다"고 말했다.


당시 인수주체인 동양메이저는 직접 보유중인 주식을 담보로 인수자금을 마련한 것이지 LBO방식으로 한일합섬을 인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회장님이 불구속 기소됐던 지난해 9월26일 직후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급작스럽게 불거지며 그룹도 현안들로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며 "그러나 회장님이 서울-부산을 오가며 공판에 참석해야 해 부재 중일 때가 많아 안타까왔다"고 했다.



현 회장의 불구속 기소를 신호탄으로 한일합섬 인수 주체인 동양메이저 (798원 ▼1 -0.13%) 주가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리며 한 달 만에 60% 폭락하기도 했다. 당시 1개월 새 2300억원이 넘는 시가총액이 공중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동양그룹은 현 회장의 이번 무죄 판결로 다시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다. 현 회장이 그룹 경영에 매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그룹의 또 다른 관계자는 "그룹 수장이 경제면이 아닌 사회면에 오르내리는 것을 봐야하는 임직원들의 마음은 침통하기 짝이 없었다"며 "이번 판결은 전 직원이 새롭게 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동양그룹 현 회장은 11일 을지로 동양종금증권 빌딩으로 출근해 다시 업무에 들어간다.



한편, 이번 판결은 LBO(차입인수)의 위법성 문제를 재고해야 한다는 시사점도 던졌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전 산업에 걸쳐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이 활발할 수 있어 제2, 제3의 동양그룹 같은 억울한 사례가 나올 수 있다"며 "LBO에 대한 배임죄 적용을 어떻게 우리 현실에 맞춰 갈지 법과 제도를 구체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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