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증시 '만성환자'와 같다

머니투데이 정영화 기자 2009.02.05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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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증시 talk talk

“IMF시절엔 우리 경제와 증시가 ‘급성환자’ 같았다고 할 수 있죠. 지금은 그때와는 달라요. 뭐라 할까. ‘만성환자’ 같다고나 할까요?”

지난 1월29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만난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21년간 증권계에 몸담은, 그것도 리서치로 외길을 걸어온 유명 투자전략가의 얘기다.



만성환자라는 표현에서 우울함이 느껴진다. 약간은 섬뜩하기까지 한다. 그러면 우리 주식시장에 희망이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IMF 외환위기 때보다 피를 적게 흘리고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인지 헷갈린다.

급성환자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IMF 때에는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잘 나가던 대기업들이 갑자기 두손 들고 문을 닫았고, 수많은 실직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부는 구조조정이라는 날카로운 칼날로 썩은 부위를 과감하게 도려냈다. 노숙자들이 대거 양산돼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명퇴’(명예퇴직)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그래도 ‘예금’이라는 여분의 실탄을 갖고 있었던 서민들이 많았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큰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극단적인 상황들이 다행히(?) 그때만큼 잦지 않다. 정부 주도보다는 기업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삼성이 슬림화작업을 하고 있고, 포스코 등 다른 대기업들도 임원 물갈이 등 자체적인 구조조정 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규모 해고와 같은 무시무시한 칼날을 들이대는 기업들은 많지 않다.

문제는 한국과 같이 아시아 일부 국가에 국한됐던 IMF 외환위기와 달리 지금은 경제위기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점이다. 한 마디로 IMF 시절처럼 우리끼리 잘해보자고 ‘금 모으기’를 한다고 해서 쉽사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글로벌 동조화, 이 단어가 새삼스럽지 않다.

IMF 외환위기 때 급성 환자처럼 단기간에 환부를 잘라내 빠르게 회복됐던 것과 달리, 지금은 치료받아야 할 부위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다. 또한 서민들이 몇개의 예금통장을 갖고 있던 그 시절과 달리, 지금은 수천만원씩 부채를 떠안고 있다. 이 센터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IMF시절엔 명퇴를 당했어도 얼마를 버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해고되면 가계 빚 때문에 끝장나죠."

부동산 호황 때 너도나도 빚내서 집을 산 뒤끝이 이런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만약 대규모 해고와 같은 구조조정이 일어날 경우 IMF 때보다 훨씬 더 피를 흘릴 수도 있는 것이다.



경기침체의 끝이 확인되지 않은 지금 주식시장이 가파르게 올라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주식시장이 경기상황보다 6개월가량 선행한다고 해도 경기침체가 올 3분기에 해소될지는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비관만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주식시장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IMF 외환위기와 지난 2001년 9.11테러 직후 주식시장은 박살이 났지만 결국 V자형 회복세를 보이며 살아났다. 당시 주식시장도 영원히 살아나지 않을 것만 같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만성 환자가 병을 이겨낸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물론 지금은 글로벌 동조화로 인해 혼자만 꿋꿋이 살아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과거 위기 때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우리의 저력이 완전히 죽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또 아는가. 감기에 걸렸다가 나은 뒤 면역력이 강화되듯 이번 병마를 계기로 우리 증시와 경제 체력이 더욱 강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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