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만능'깨진 신화… '보이는 손' 세진다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2009.01.1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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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스템, 새로운 도전<3·끝>

- '디레버리징 시대' 정부 역할 확대 전망
- 규제강화·시스템개혁 논의 수면위로
- "과도한 억제책은 경제활성화 장애물"

유례 없는 경제위기를 맞아 '디레버리지(Deleverage)형' 금융정책이 부상하고 있다. 세계적 금융위기가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들의 과도한 차입에서 비롯된 만큼 이제는 레버리지를 줄이고 기초체력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위기감에 휩쓸려 레버리지를 터부시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잖다. 레버리지는 불황의 골을 깊게 했으나 적절히 활용한다면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이는 양날의 칼에 베이지 않으면서 적절히 쓸 수 있는 범위에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장만능'깨진 신화… '보이는 손' 세진다


주요국 정부나 중앙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재정 및 유동성 공급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디레버리징시대'를 맞아 정부의 지원은 물론 규제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이번 위기가 과도한 금융규제 완화에서 비롯된 만큼 규제 강화와 금융시스템 개혁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국가의 귀환=미국과 유럽 각국은 이미 금융회사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이를 국유화하고 있다. 증권화상품과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거래 등에 대한 자본규제, 공시의무 등을 강화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아울러 과도한 자산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자본규제 및 충당금 적립을 엄격히 만드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자기자본이나 충당금 요건을 높이면 은행들은 경기호황기에 자산을 무리하게 늘리기 어렵다.

신용파생상품시장에서 거래 상대방의 위험을 줄이고 파생상품에 대한 정보를 집중하기 위해 중앙집중거래상대방제도를 도입하거나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장외파생상품 청산·결제인프라를 개선하는 방안도 논의된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후유증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면서 경제 전반적으로 정부 개입이 확대되고 있다"며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금융기관 및 상품에 대한 지나친 규제완화와 신자유주의정책이 지목되면서 정부의 금융시장 규제는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역시 지난해말 은행의 외화자금 차입에 지급보증을 서주고, 1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조성해 회사채 등을 매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20조원 규모의 은행자본확충펀드를 조성, 은행에 사실상 준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대신 은행의 자구노력 등을 요구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해 일정부분 은행 경영에 입김을 미칠 수 있게 된다.



◇금융규제 어디까지=물론 일정 수준의 규제는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이번 위기는 과도한 레버리지로 부풀려진 자산가격의 거품이 빠지면서 확대됐고, 이 과정에서 현행 금융시스템의 취약점이 그대로 노출됐다는 판단에서다.

금융회사의 불건전한 대출 취급이나 파생상품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미흡했다. 해당 상품에 대한 신용평가제도가 불합리했을 뿐 아니라 투자자들의 주의의무도 소홀했다. 특히 구조화 채권 등에 대한 감독이 소홀했던 탓에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컸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호황기에는 레버리지가 높아져 과열을 낳고 침체기에는 디레버리징이 빠르게 진행돼 위기가 커진다"며 "어느 정도 레버리지를 억제해 심각한 손실이나 과잉반응을 줄이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과도한 규제 강화가 신속한 실물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금융회사들이 모두 디레버리징에 나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디레버리징이 과도하게 지속되면 신용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오히려 경기침체가 심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장희 국민은행연구소 경영연구부장은 "경험상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8%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권고가 있다"며 "국내 은행들의 경우 BIS비율 12~13% 얘기가 나오는 것은 상대적으로 대출자산 비중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실질적으로 연체율 등을 볼 때 미국보다 높은 것이 아니어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 BIS비율을 너무 엄격히 관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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