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정운찬 전 총장 강연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2009.01.1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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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위기와 한국경제의 미래

정운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전 총장)는 12일 한국금융연구원이 개최한 '석학강좌'에서 "한국경제가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경제팀이 시장에서 신뢰와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정 전 총장의 강연 전문이다.

세계 경제위기와 한국경제의 미래



(인사말)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한국경제에도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혹자는 겨울이 곧 지나고 따뜻한 봄이 찾아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어떤 이들은 이것이 사실은 긴긴 빙하기의 시작일 뿐이라고도 합니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만큼 앞이 보이지 않는 위기는 아마도 1929년 대공황 이후 처음일 것입니다. 그야말로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불확실성의 시기입니다.



이 불확실성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 경제위기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미국과 한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위기의 원인을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경제위기에 대한 단기적, 장기적 대책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경제위기의 원인 - 미국의 경우

1.1 직접적 원인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잘 아시다시피 서브프라임 대출을 통한 주택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미국의 중앙은행이 2001년 9.11사태 이후 저금리로 돈을 너무나 많이 풀었고, 미시적으로는 금융감독당국이 주요 투자은행들에 대한 자기자본 규제를 완화해주면서 서민들의 내집마련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건전성 감독도 소홀히 했습니다. 이렇게 거시적, 미시적으로 느슨해진 금융환경에서 사람들이 돈을 빌려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투기에 참가하다가 문제가 터진 것입니다.

이러한 투기붐과 그 붕괴의 과정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투기가 시작되고 그로 인해 횡재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또 뒤늦게 일반인들이 뛰어들면서 온 사회가 투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때 사람들은 그것이 투기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좋은 주거공간의 가치가 재평가되는 것이라는 식입니다. 이렇게 자산가격이 오르게 되면 돈이 없는 사람들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돈을 빌려다가 투기를 하게 되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빌려 투기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가 실제 가진 돈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투기에 집어넣는 것은 금융시스템을 통해 레버리지를 일으킴으로써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과다한 신용수요는 금리를 높이게 되는데, 어느 순간 몇 몇 사람들이 투기로 생긴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자산을 팔게 되고, 또 이것이 자산가격 상승을 주춤하게 하면서 반전이 시작됩니다. 반전이 시작되면 돈을 빌려 투기를 한 사람들부터 앞 다투어 자산을 내다 팔면서 시장에는 공포심이 퍼지게 되고 어느덧 거품은 붕괴되고 맙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튜울립버블, 영국의 남해버블, 프랑스의 미시시피버블, 그리고 1929년 미국의 대공황, 1980년대말 90년대초 일본의 부동산버블, 그리고 최근 전세계적인 부동산버블 등 수많은 사례에서 비슷한 형태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1.2 근본적 원인

그럼에도 이번 금융위기가 좀 더 특별해 보이고 많은 이들이 전대미문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이번 위기가 자산버블의 붕괴와 소멸이라는 일반적 측면을 가지면서 동시에 실물경제의 불균형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실물경제가 건전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잠시 정신이 팔려 자산버블이 발생했다기보다는 실물경제의 불건전성이라는 좋지 않은 환경에 깊이 뿌리를 박은 채 자산버블이 자라났기 때문에 더 악성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뿌리 깊은 버블은 역사상 흔치 않은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치유하는 데에도 더 많은 노력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실물경제의 불건전성이란 지난 30년 동안 지속되어 온 미국경제의 고질적 문제, 즉 생산보다 소비를 더 많이 해왔다는 점을 말합니다. 미국은 생산과 소비의 괴리를 외국으로부터 물자를 수입해서 메웠습니다. 수입대금은 1차적으로 달러 형태로 외국으로 나가지만 그 돈은 수출국이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다시 미국으로 흘러 들어와서 미국의 유동성, 쉽게 말해서 돈을 늘려줍니다. 그리고 늘어난 돈은 다시 생산한 것 이상으로 소비를 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때에도 예외 없이 물자의 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고 달러는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흘러 들어옵니다. 이 과정이 수 십 년간 반복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은 달러화가 세계의 기축통화, 즉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통화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혜택을 듬뿍 받으며 살아 온 것입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소비가 생산을 능가하는 정도는 그리 크지 않아서 감당할 만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대기업, 중소기업, 소비자, 정부, 노동조합이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사회의 생산물이 비교적 골고루 분배되어 나름대로 평화로운 시대를 구가했습니다. 이른바 민주적 자본주의가 형성되었던 것이고, 혹자는 이를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미국 자본주의는 변모했습니다. 각 개인이 한편으로는 소비자로서 될 수 있으면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사려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투자자로서 될 수 있으면 높은 수익을 올리기를 열망했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욕구입니다. 또 이 욕구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열망이 극에 달하면서 갖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월 마트가 소비자의 싼 물건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고 월 스트리트가 투자자의 높은 수익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키면서 민주적 자본주의는 사라지고 라이히(R. Reich)의 이른바 슈퍼자본주의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제 소비자의 싼 물건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자니 한편으로는 노임이 싼 신흥공업국에서 거의 무제한적으로 물건을 사오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 국내적으로는 임금 인상을 제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투자자의 높은 수익 욕구를 채워주자니 금융기관들은 위험이 높은, 다시 말해서 수익률이 높을 수도 있지만 낮을 가능성도 마찬가지로 높은 유가증권에 투자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수익은 고위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은 현상은 미국의 자본주의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언젠가 외국인들이 미국 달러가 너무 풀려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면 미국은 더 이상 달러를 주고 외국물건을 싼 값에 사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경제는 대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더 나아가 미국 주도의 세계자본주의는 종언을 고할지도 모릅니다.

다시 미국 소비자들에게 돌아가 봅시다. 지난 30여 년간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중산층의 임금은 거의 변함이 없었습니다. 남성 노동자의 임금은 실질적으로 하락했으며 그 가운데서도 30대 젊은이들의 실질임금은 12%나 감소했습니다. 미국의 상류층이 하이테크와 글로벌화된 경제의 과실을 크게 누리는 동안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아무런 덕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절대적, 상대적 빈곤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장의 과실을 누릴 수 있었던 상류층은 호화로운 생활을 구가했고 이를 본 중산층들도 상류층의 소비 패턴을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당장 소득이 부족하더라도 부자들이 호화롭게 사는 것을 보면 그것을 어떻게든 따르려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무엇이 그러한 시도를 가능케 했겠습니까? 한 가지 방법은 맞벌이입니다. 1970년대에 30%대이던 취학아동 어머니들의 취업률은 70% 가까이로 오르게 되었습니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30년 전에 비해 1년에 2주일을 더 일합니다. 그러나 노동시간의 증가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구는 제한되어 있고 하루도 24시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빚입니다. 미국인들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집값이 올라가자 집을 담보로 빚을 얻어 화려한 생활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흥청망청하는 분위기에서 신용카드를 마치 하늘로부터 만나가 내려온 듯 마구 긁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욕심이란 끝을 모르고 커가는 법입니다. 집값 상승에서 재미를 본 미국인들은 집을 더 이상 주거용으로 생각지 않고 투자용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순박한 일반 미국인들이 영악하게 된 것입니다. 집이 없는 사람들도 집값이 오르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집 장만을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매매차익을 위해 집 구입에 열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집값 상승은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한 나라들이 미국에 부동산을 사대면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부동산업자나 모기지 취급 은행들이 재미를 본 것은 물론입니다. 그들은 내 집 마련, 또는 제2, 제3 주택에 관심을 보이는 일반인들을 모기지 시장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물론 높은 투자수익률이 커다란 미끼였습니다. 모기지 시장의 불은 이때부터 붙기 시작했습니다. 은행은, 투자은행이건 일반은행이건 가릴 것 없이, 커다란 부동산 용광로에 자신은 물론이려니와 일반 대중들을 끌어넣은 것입니다.

모기지 대출을 바탕으로 갖가지 파생상품이 나오고, 제2, 제3의 파생상품이 나오면서 수익률은 자꾸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에 따라 위험도 커졌습니다. 아무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면서 대규모 투기장에 들어갔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된 격입니다.

월 스트리트는 원래 뉴욕에 정착한 네덜란드인들이 인디언의 공격을 막아내려고 쌓은 담이 있던 거리입니다. 월 스트리트는 인디언의 공격은 막아냈는지 모르지만 자신들의 욕망이 스스로를 집어삼키는 것은 막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 경제의 문제는 금융시장에서 나타났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금융시장보다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생산한 것보다 더 소비하는 행태를 고치고, 소득 분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치유하기 힘든 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2. 경제위기의 원인 - 한국의 경우

2.1 단기적 요인

그러면 한국은 어떻습니까? 한국의 경제위기는 1차적으로 주가와 환율의 급변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제 그것이 부동산 거품붕괴와 가계발 금융부실 및 건설업의 위기 가능성, 그리고 세계 경기침체에 따른 조선, 자동차산업 등에서의 수출경기의 둔화와 전반적인 내수침체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원인들을 짚어보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의 환율 급변동 문제를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한국 정부의 경제팀은 자리에 앉자마자 환율상승이 바람직하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곤 했고 이에 따라 환율이 크게 상승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환율이 세계적인 달러 약세기에 상승하는 바람에 수입물가가 급등해서 물가고통이 심화되었고 또 키코(KIKO)라는 파생상품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이 천문학적 액수의 손실을 보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드러나자 경제팀은 거꾸로 달러강세기에 환율하락을 유도했고 여기에는 수백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이 소요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장에 대한 정부 경제팀의 리더십은 실종되고 말았고 경제의 불안정성은 가중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2.2 근본적 원인

다음으로 우리나라 경제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짚어보겠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한국도 미국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국에서도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돈을 빌려서 투기에 뛰어든 사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미국보다는 덜 떨어졌지만 가격이 크게 하락한 아파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치 시장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2006년 가을을 상기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투기가 얼마나 심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집을 살 때 그 집이 주는 서비스보다는 집값이 앞으로 더 오를 것 같아서, 즉 지금이 아니면 영영 집을 사지 못할 것 같아서 집을 산다면 그것은 이미 투기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당시 멀쩡히 잘 살던 사람들이 돈을 빌려다가 자기 소득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집을 샀고, 이들은 지금 한 달에 백만원, 이백만원씩 이자를 내느라 삶의 질이 크게 떨어져 있습니다. 만일 이들이 경기침체로 실직이라도 하는 날이면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도 덩달아 위험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한국의 경우에는 경제구조가 건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투기가 일어난 것이겠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처럼 경제의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되었습니다. 소득분배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었고 경제구조의 불균형은 날로 심화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중산층과 저소득층도 미국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소득층의 소비를 따라잡으려 애썼습니다. 좀 더 좋은 아파트에 살고 싶고 차도 한 대 갖고 싶고 또 다른 집 애들 다니는 좋은 학원에도 보내고 싶은 것은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욕망일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욕망을 소득이 뒷받침해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축을 줄이고 나아가 빚을 내서 돈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가계의 건전성은 이미 위험수위에 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 1999년에만 해도 우리나라 개인들의 순저축률은 15%를 넘고 있었습니다만 2007년에는 이 수치가 2.3%로 떨어졌습니다. 이는 모든 계층을 평균한 수치이므로 저소득층들은 저축이 사실상 마이너스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처음에는 신용카드를 매개로 저소득층들이 빚의 늪에 빠져 들더니 다음에는 주택담보대출을 매개로 중산층들까지도 빚의 멍에를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빚을 통해서 소비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빚을 통해 자산을 구입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지금 미국의 투자은행들이 왜 망했겠습니까? 빚을 내서 위험한 자산에 투자를 하다가 망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투자 전문가도 아닌 일반 가계가 이러한 일에 손을 대고 말았으니 아찔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저는 이번 사태로 우리나라의 중산층이 붕괴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두터운 중산층이야 말로 사회를 유지하는 기둥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중산층 없이 부자들과 가난한 이들만 존재한다면 그 사회는 기둥 없는 집과 같아서 곧 무너지게 됩니다.

지금 한국의 가계들은 미국보다 더 많은 이자비용을 내고 있고 소득에 비해 더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미국과는 달리 대부분 중산층들이라서 근근이 버티고는 있습니다만 이들의 소득흐름에 충격이 와서 원리금을 연체하다가 부실이 되고 하면 금융권도 함께 위험해지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지난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부채를 많이 쓰지 않고 재무건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영을 했습니다. 한 번 크게 덴 후 배운 교훈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위기는 반드시 똑 같은 자리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가계가 문제가 된 것입니다.

가계부실의 문제는 가계소득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일자리의 문제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가계가 괜찮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고 또 이를 잘 유지할 수 있었다면 애당초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수출대기업 위주의 경제운용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의 팔구십 퍼센트를 차지하는 중소기업과 내수는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말았습니다. 수출대기업의 성과가 아래로 흘러넘치는 트리클다운을 기대했었지만 경제의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국내 산업연관 구조가 단절되는 바람에 경기도 양극화되고 일자리도 양극화되었습니다. 이는 아래쪽에 있는 대부분의 가계들을 부실화시킨 근본 원인입니다.

물론 외환 때문에 데었으니 외화를 모으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내수와 중소기업이 튼튼하다고 해서 외화를 모으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독일이나 일본은 내수와 중소기업이 우리보다 훨씬 튼튼하면서도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보고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그나마 성장동력으로 기능했던 수출산업까지도 이제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의 대외의존성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GDP에서 수출은 40%대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90년대 중반의 30% 미만 수준보다 훨씬 높아진 것이고 또 그 비율이 30%를 넘지 않는 대다수 중규모 이상 선진국들의 경우보다도 크게 높은 것입니다.

대외의존성은 세계 경기에 대한 민감도를 높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마치 고위험-고수익 투자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제 고수익보다는 고위험이 현실에 가까운 시기가 되고 만 것입니다.

결국 우리나라는, 경제의 양극화, 대외의존성 심화와 함께 일자리와 소득이 양극화되었고 그것이 가계의 부실을 가져와 경제위기의 뇌관이 되고 만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가계부실, 건설업과 조선업 등의 부실에 따른 금융부실, 그리고 금융부실이 추가적인 실물부문 위축을 수반하는 총체적 위기의 가능성마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3.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3.1 미국의 경우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미국의 경우를 보면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서 위기에 과감히,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오바가가 추진할 것으로 알려진 신뉴딜정책은 많은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집값은 앞으로도 더 떨어질 것으로 예견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난관이 기다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요한 것은 미국도 과거 30년 동안 지속되었던 적자경제를 탈피해서 건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방향을 전환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보호무역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자동차 회사 빅쓰리에 대한 지원은 사실상 자유무역의 원칙을 거스르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종류의 무리한 산업지원이 근본적 해결책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위기의 뿌리였던 슈퍼자본주의를 탈피해야 합니다. 각 개인이 싼 값의 소비재를 찾고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투자처를 찾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이지만, 정부와 양식 있는 지식인이 나서서 이러한 욕망을 빚을 통해 해소하기보다는 경제의 균형회복을 통해 해결하도록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단기에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노동자의 소득기반을 튼튼하게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교육부문을 개선해서 재산이나 소득에 관계없이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소득과 부의 분배를 개선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미국 경제를 고치는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3.2 한국의 경우

다음으로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위기에 잘 대처해서 파국을 막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신뢰와 리더십의 문제)

먼저 단기적 과제는 무엇보다도 정부 경제팀의 신뢰와 리더십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경제팀은 미국 경제팀보다도 훨씬 시장에서의 신뢰와 리더십이 취약합니다. 이는 현재와 같은 금융위기 시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금융위기 때 경제정책 책임자의 판단은 흔히 아트(art)라고도 합니다. 이는 경제정책이 단순한 스킬이나 테크닉보다 좀 더 고차원적인 판단을 필요로 하는 매우 섬세한 작업이라는 뜻입니다.

예컨대 똑같은 정책수단이라도 언제 어떤 상황에서 실행하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위기 시에는 경제변수들의 민감도가 높아져서 변수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매우 활발해지는데, 이는 인간의 심리가 극도로 민감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심코 한 발언에도 집단심리가 반응해서 전혀 예기치 못한 결과가 발생하곤 합니다. 따라서 발언의 타이밍이나 수위, 예상반응 이런 것들까지도 충분히 고려해서 정책을 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정책 책임자의 발언이나 행동은 동태적으로도 잘 조율되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어제 어떤 말을 하고 오늘 어떤 말을 했을 때 그 말들의 내용이 일관되느냐 아니면 말이 바뀌었느냐에 따라 정책의 효과는 전혀 다르게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말이 바뀌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게 되면 정책효과는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경제학에서는 동태적 비일관성(dynamic inconsistency) 문제라고도 합니다. 예를 들어 성장률 몇 퍼센트를 달성하겠다고 하다가 다음날 경제위기가 다가온다고 하는 식의 일관되지 못한 행태는 시장으로 하여금 정책당국의 말을 불신하게 하고 오히려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만을 초래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위기에 잘 대응하려면 무엇보다도 경제팀이 시장에서 신뢰와 리더십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이들 스스로 일관된 위기 극복을 위한 청사진을 가져야 합니다. 큰 그림 없이 대증적으로 대응하다가는 스스로 일관성을 잃게 되고 신뢰도 잃기 쉽습니다.

(뉴딜)

다음으로 지금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일종의 뉴딜정책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중심으로 이른바 녹색뉴딜 정책을 착수한다고 하는데, 이는 1930년대 미국의 뉴딜에다가 녹색 이미지를 더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뉴딜이라는 말에서 대규모 치수사업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기는 합니다. 그러나 뉴딜의 본질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1930년대의 뉴딜은 그 유명한 테네시강 유역 개발사업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금융규제, 노동자의 권익보호, 사회안전망 등 국가개입의 확대가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단순한 SOC 투자가 아니라 경제운용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입니다.

지금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당선자가 이야기하는 신 뉴딜도 정부 건물의 에너지효율을 높인다든지 지방정부로 하여금 낡은 도로나 교량을 보수하게 한다든지 또 학교와 도서관에 초고속인터넷망을 놓는다든지 하는 생산성 중심의 공공투자 확대가 주 내용입니다. 앞으로 재규제(re-regulation)나 교육 및 복지투자 확대도 신 뉴딜의 주요 항목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뉴딜이든 신 뉴딜이든 뉴딜은 경제의 안정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의 역할을 확대하는 정책 틀로 보아야 합니다. 더욱이 신 뉴딜은 지난 30년 동안의 반 뉴딜적 흐름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합니다. 1930년대의 뉴딜을 통해 자리잡은 정책과 제도들 중에서 예금보험제도, 사회보장제도, 증권감독제도 등을 제외한 대부분이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의 탈규제 흐름 속에서 폐기되거나 약화되었습니다. 이후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30년이 전 지구적 경제위기를 통해 그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에 새로운 뉴딜을 통해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생겨난 것입니다.

즉, 규제완화로 아무나 빚을 낼 수 있게 하고 지구화로 개발도상국의 싼 물건을 무제한적으로 들여와서 사회를 유지하는 방식이 이제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모색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의 녹색뉴딜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토목건설 중심의, 눈에 보이는 성과 중심의, 우리가 과거에 많이 보아왔던 그 패러다임에 가까워 보입니다.

물론 SOC 투자를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성이 충분히 검증된 프로젝트들은 더 속도를 낼 필요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비경제적 비용과 효과를 충분히 감안하지 않고 추진되는 사업들은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미래 세대에 부담으로 남을 우려가 큽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SOC 말고도 우리가 시급히 필요로 하는 공공 프로젝트들은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기초 연구개발은 매우 부족합니다. 또 사회안전망도 아직 약하고 교육이나 보육 시스템에 대한 공적 투자도 크게 부족합니다. 저는 이러한 사람과 아이디어에 대한 투자들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훨씬 더 시급할 뿐더러 이러한 투자야 말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뉴딜을 하려고 한다면 경제운용의 패러다임 전환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자신들의 과거 생각대로 밀어붙이기 전에 새로운 시대상황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구조조정)

다른 한편으로 지금 우리나라에서 토목건설 뉴딜이 급히 추진되는 것은 건설산업의 추락을 막자는 데에도 하나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부동산 거품이 부풀어 오를 때 우리나라 건설산업도 크게 비대해졌고 이제 거품이 꺼지게 되면 이 산업도 위험해지는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그래서 갖가지 건설호재들을 정부가 계속 만들어내고자 하는 유인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거품은 반드시 꺼지게 되어 있고 새로운 호재들을 만들어서 거품을 지탱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돈 저 돈 끌어다 무리하게 건설산업을 지탱시키는 것보다는 건설산업을 적정한 수준으로 조정되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입니다.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빨리 옥석을 가리도록 유도하고 부실한 기업은 퇴출시키되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에 처한 기업에는 유동성을 공급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4. 결론

지금까지 미국과 한국을 중심으로 경제위기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금융위기이면서 동시에 오랜 기간 동안 경제가 불균형적으로 발전해온 데 대한 반작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경제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는 금융시장에 돈과 신뢰를 공급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뉴딜과 같은 패러다임의 전환도 중요합니다.

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장에 대한 우리의 생각부터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은 매우 효율적인 자원배분 수단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인간이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완전무결할 수 없고 때에 따라서는 깨지기도 합니다. 맹목적인 시장만능주의보다는 좀 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 대내외적 규제완화, 특히 미국식 - 정확히 말하면 금융위기 직전의 미국식 - 시장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정책들은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래야 뉴딜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미국이든 한국이든 사회통합이 매우 중요한 시기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분배가 악화되다가 발생한 위기입니다. 그래서 더욱 악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득기반이 튼튼해지고 분배도 개선되는 시점에서 발생한 거품이 아니라 사회가 분열되는 것을 빚으로 땜질을 하다가 만들어진 거품이 붕괴한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어떤 위기보다도 사회통합이 중요합니다. 또 그래서 소득분배의 개선도 중요해집니다. 이번 위기에서 우리는 경제적 약자의 소득기반을 튼튼히 해주지 않는 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위기가 빙하기가 아니라 좀 추웠던 겨울로 기억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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