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샌드위치로 피아노 본고장 공략합니다"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2009.01.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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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초대석]김종섭 삼익악기 회장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사진=송희진 기자▲김종섭 삼익악기 회장ⓒ사진=송희진 기자


삼익악기 (1,064원 ▼5 -0.47%)가 법정관리의 아픈 기억을 털고 악기 명가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특히 유럽 미국 일본 피아노에 치이고 중국산에 쫓기는 '샌드위치' 신세에서 탈피, 유럽시장을 본격 공략하겠다고 나섰다.

삼익악기는 올해 피아노 본고장인 유럽을 본격 공략한다. 이를 위해 지난해 독일의 피아노업체를 인수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매출과 이익이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익악기는 1996년 부도를 내고 긴 법정관리(98~2002년)의 터널을 지나왔다. 극적인 턴어라운드의 비결이 무엇일까. 삼익악기를 이끌고 있는 김종섭 회장을 만나 경영전략 등을 들어봤다.

-악기산업도 중국·일본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 아닙니까.



▶유럽·미국·일본 다음이 한국 피아노였는데 한국산보다 훨씬 싼 중국산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샌드위치 신세가 됐죠. 큰 문제가 브랜드의 저가 이미지였어요. 기술부터 독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영이 어려운 유럽 회사들을 인수해서 연합군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벡스타인과 자일러를 인수했군요.

▶벡스타인은 우리가 값싼 원자재와 반제품을 공급해서 좋고, 우리는 벡스타인의 기술을 도입하고 그 제품을 팔아서 이익을 봤어요. 700만달러의 새로운 매출이 생겼으니 윈윈(win-win)한 것이지요.


작년말 독일 피아노 업체 자일러를 100% 인수했어요. 벡스타인보다 작지만 160년 됐으니까 전통은 더 있지요.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술력을 보강하는 전략을 펴신 거군요.



▶이제 피아노 본고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는 겁니다. 자일러가 삼익악기의 독일 공장이자 전진기지 역할을 충분히 해줄 겁니다. 삼익이 유럽에 700만 유로 정도를 팔고 수출물량 가운데 유럽 비중은 25%입니다. 자일러를 통해 올해 500만 유로를 늘릴 겁니다.

-한국 소비자들에게도 득이 됩니까.

▶하반기에 우리 고객들이 '메이드인저머니'(독일산) 삼익피아노를 만날 수 있습니다. 현지 자일러 공장에서 생산하고 삼익 브랜드를 붙입니다. 저가 이미지가 강했던 삼익악기의 브랜드가치를 완전히 높여서 고부가가치 제품이 되게 할 겁니다.



-2002년 법정관리중이던 삼익악기를 인수하셨지요. 인수후 승산이 있다고 보신 이유는 뭔가요.

▶종전 삼익악기를 들여다보니 사업적 요인보다 외적 요인으로 망가졌더군요. 창업주가 너무 일찍 돌아가셨고, 2세가 맡았을 때 금융사고도 났어요. 97년 IMF 위기 전에 이미 부도가 났지요. 당시 한국공장 근로자가 1600명입니다. 이미 경쟁력을 잃었는데 노조에 발목 잡혀서 구조조정을 못하고 있었어요. 끝내 협상을 통해 6년에 걸쳐 서서히 생산시설을 빼도록 했어요.

-삼익악기가 몰라보게 달라졌는데 주가는 제자리입니다.



▶새로운 투자를 늘리느라 배당도 못했지요. 올해부터 배당할 수 있을 겁니다. 같이 고생한 주주들에게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현재 주가가 액면가와 비슷한 수준이니 사실상 시가배당을 하게 되는 셈이네요.

-올해 내수가 위축될 텐데, 자신감을 갖는 이유가 있습니까.

▶피아노 판매는 줄었지요. 하지만 기타 판매가 늘어서 그걸 메웠습니다. 기타는 단가가 올랐는데도 판매가 늘었어요. 불황이면 실내 활동이 많아지거든요. 그래서 피아노 판매도 곧 회복될 거라고 봅니다. 매출 70%가 수출에서 나오니까 환율도 도움이 됩니다.



- 항공사 남자 승무원(스튜어드)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셨더군요. 이후 어떻게 아스팔트 생산자로, 다시 국내 굴지의 피아노 회사 오너로 변신하신건가요.

▶대학 졸업후 해외를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싶어 스튜어드란 직업을 택했어요. 당시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보고들은 것 때문에 글로벌 마인드를 일찍부터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직원 4명과 함께 아스콘 레미콘 공장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88 올림픽전에 건설경기 붐이 일어날 때 기반을 잡았어요. 한때 대한민국 레미콘·아스콘 공장 60%는 제가 공급했어요.

한국 건설업체들이 도로 포장에 강해 중동에 진출했고 우리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해죠. 중동이니 동남아에 진출하는 건설업체들이 우리 레미콘을 갖고 가니까 인지도가 생겼죠. 공사 끝나도 기계를 거기 팔고 나오니까 덕을 많이 봤죠.



조그만 섬 발리에도 우리 기계가 들어가서 비행기 활주로를 깔았지요. 인천공항 도로도 100% 스페코의 아스팔트 플랜트로 한 겁니다. 제가 반 농담으로, 발리에서 만리장성까지 다니는 길이 다 스페코 장비로 깔았다고 얘기할 정도입니다.

-건설 관련업에서 악기회사를 인수한 건 의외입니다. 그 이유는.

▶제조업은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술과 사람이 핵심이죠. 기계를 해보니 기술 없이는 안되더라고요.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인재입니다. '사람' 때문에 한국이 강국이 됐다고 봅니다. 현대자동차에서 GM을 경영하면 지금 GM 경영진보다 훨씬 잘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삼익악기에 매력을 느낀 다른 이유도 있습니까.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사진=송희진 기자▲김종섭 삼익악기 회장ⓒ사진=송희진 기자
▶스페코는 아스팔트 플랜트를 인도네시아 이집트 사우디 등 20개국 이상에 팔았어요. 삼익악기는 어떨까요. 자재는 중국·캐나다에서 가져와서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만들어서 유럽과 미국에 팝니다. 매출의 70%가 수출에서 나와요. 삼익악기 인수 적임자가 누구냐 했을 때 글로벌 경영을 할 사람 아니면 안된다고 봤어요.

-글로벌 경기침체로 어려운 상황인데 인수합병까지 나선 이유는.



▶지금이 기회라고 봅니다. 사업을 34년간 했지만 경영이 쉬웠던 적은 별로 없습니다. 시야가 넓어졌기 때문인지 오히려 예전보다 기회가 많아진다는 느낌입니다. 다행히 삼익의 자금력이 괜찮습니다. 자산도 풍부합니다.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CEO의 체력은 회사 경영과 직결됩니다. 운동은 골프를 좋아해요. 좋은 친구들과 만난다든지, 정말 긴장될 때는 혼자 인터넷 바둑도 둡니다. 바둑은 아마 3단입니다.



-인생의 목표로 정해놓으신 것이 있나요.

▶나눔이라는 화두에 관심이 많습니다. 빌 게이츠가 100년 전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처럼 성공했을까요. 마찬가지로 제가 오늘날 이런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내 노력이 30%, 사회가 만들어준 게 70%이라 생각합니다. '운칠기삼'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어려운 나라 어린이들을 돕고, 모교에도 돌려주면서 살겠다고 뜻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일흔까지 열심히 또 즐겁게 일할 겁니다. (김 회장은 서울대 장학재단에 10억원을 기부했고 ROTC 중앙회관 건립에도 기부할 계획이다. 나눔문화국민운동본부에 김성이 전 복지부장관, 탤런트 이순재씨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우리 회사는 특히 해외고객이 많습니다. 먹고 살 수 있지만 문화를 즐길 수준에 못미치는 세계 10개국을 선정해서 10년간 각국에 10만달러어치씩 총 1000만달러 어치 악기를 보급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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