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 바이러스'에 전염되다

머니투데이 오수현 기자 2009.01.08 16:04
글자크기

머니투데이 신년음악회 대성황... 데뷔 40주년 정명화 첼로협연

'정명훈 바이러스'에 전염되다


◇ 2500 관객, 유목민과 춤추고 보헤미안과 노래하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TV드라마 '베토벤바이러스' 때문일까. '2009 머니투데이 신년음악회'를 찾은 관객들의 시선은 온통 지휘자에 쏠려 있었다. 음악은 그저 악기 연주로 만들어진다고 믿었던 한국의 관객들은 이제 오케스트라 전체를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마에스트로의 가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날의 마에스트로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이었다.



이날 세종문화회관을 찾은 2500명의 관객들은 '정마에'의 몸짓 하나하나에 열광했다. 때론 격정적으로, 때론 여리고 섬세하게 흔들리는 그의 몸짓을 따라가는 관객들의 눈빛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강렬했다.

'정명훈 바이러스'에 전염되다
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2009 머니투데이 신년음악회'는 음악의 명 요리사 정명훈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선사한 다채로운 음악들의 향연이었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의 거칠고 원색적인 음식을 전채요리로 시작해, 허영심에 가득찬 유럽귀족들의 멋진 식탁에 이어 보헤미안 스타일의 매력적인 만찬으로 코스를 마무리한 마에스트로의 솜씨에 관객들은 열광하고 환호했다.



◇전채요리 - 거친, 그러나 매력적인=이날 음악회는 19세기 러시아 작곡가 알렉산더 보로딘의 오페라 <이고르 공> 중 '폴로베츠인의 춤'으로 힘차게 막을 올렸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인 폴로베츠인들이 춤추는 장면을 묘사한 이 곡은 이국적이면서 원시적이었고, 또 열정적이었다. 목관의 경쾌한 움직임으로 시작된 다섯 개의 무곡은 여인들의 우아한 춤으로 이어진 뒤 점차 남성들의 거친 군무로 변모하더니 타악기들의 리듬이 덧입혀 지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정명훈 바이러스'에 전염되다
◇메인요리1 '정명화' -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자극적인 리듬과 선율에 지쳤을지 모르는 관객들을 위한 마에스트로의 배려였을까? 이내 무대는 거친 중앙아시아 평원에서 유럽의 멋진 귀족풍 살롱으로 옮겨갔다.

와인 빛 드레스를 걸친 채 마에스트로와 손을 맞잡고 등장한 첼리스트 정명화는 거친 춤곡으로 다소 들떠있는 관객들을 향해 와인 한잔을 건네듯 섬세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매혹적인 자태로 활을 당기기 시작했다.


2중 목관과 두대의 호른, 그리고 현악기군이라는 고전적인 관현악 편성으로 자칫 지루할 뻔 했던 '로코코 변주곡'은 차이코프스키 특유의 감성이 가미돼 풍부하면서 때론 격정적이었다.

모차르트 풍의 아기자기한 주제가 제시되고 변주가 거듭될 수록 정명화의 보잉(bowing)은 거칠어졌다. 때론 신경질적이기 까지 했다. 피날레 전에 이르러선 오케스트라는 화난 첼로를 달래려는 듯 말하기를 멈췄다. 오직 첼로만이 자신의 전 음역을 오르내리며 때론 흥분한 남성의 목소리로, 때론 사근사근한 여인의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정명화 정명훈 두 남매가 선사한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메인요리에 관객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정명훈 바이러스'에 전염되다
◇ 메인요리2 '신세계'- 흥분과 설렘 그리고 그리움=마지막으로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체코 출신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를 선사했다. 서울시향은 드보르작이 19세기 후반 '신세계' 미국을 방문해 느꼈을 흥분과 설레임, 그리고 체코 특유의 보헤미안적 감성을 적절히 버무려냈다.

2악장에 이르러 그 유명한 잉글리시 호른에 의한 목가적 선율이 흘러나올 땐 객석에선 말없는 찬사가 터져나왔다. 잉글리시 호른의 음색에는 우수와 그리움이 묻어있었지만 초라하진 않았다. 그래서 매혹적이고 아름다웠다.



3악장까지 연주되면서 복선처럼 간간히 제시되던 주제의 조각들은 4악장에서 한데 어우려져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보헤미안적 선율로 자칫 가벼운 감성적 연주로 흐를 수 있었지만 오케스트라 특유의 두터운 질감과 세련된 화음, 짜음새있는 구성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웅대한 피날레를 마친 마에스트로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신세계'를 끝으로 퇴장한 정명훈을 관객들은 놔주지 않았다. 뜨거운 박수와 열띤 환호로 수차례의 커튼콜 끝에 앙코르 곡을 받아냈다. 서울시향이 앙코르로 선사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4악장의 피날레로 이날 음악회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현실의 고된 삶으로 마음이 무거웠을 관객들은 비록 2시간반의 짧은 시간이지만 풍성한 음악의 향연에 흠뻑 젖어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