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시 주식,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급락한 탓에 어려움이 크다. 정부는 비상경제상황실을 꾸리며 실질적인 '워룸'(war room) 체제를 구축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과도하게 늘린 차입금과 저수익사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디레버리지가 필수다. 한국으로서는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한국경제가 고성장하는 과정에서 레버리지 효과를 본 탓이다. 또한 기업들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레버리지를 이미 축소해 최근 디레버리지는 가계나 중소기업 등에 집중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요인이다.
◇차입 통해 대규모 투자= 대만이 최근 금융위기 타개를 위해 고강도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연말 내수진작을 위해 1인당 3600대만달러(14만4000원)의 상품권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기업에도 6000억대만달러(24조원가량)의 긴급자금을 투입하는 지원책을 추진중이다.
5일 KOTRA 등에 따르면 대만은 반도체산업을 중심으로 정부의 강력한 수출촉진 정책에 힘입어 성장을 거듭했다. 컴퓨터·전자산업이 주식시장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 이상으로, 국가경제가 반도체산업에 따라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이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대기업 중심인 데 반해 대만은 중소기업 네트워크를 성장의 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는 빠르게 변하는 세계 부품시장 수요에 탄력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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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거듭하던 대만에 이상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전후다. 이때 대만은 세계 컴퓨터 메인보드 수출시장의 90%, 마우스 등 주변기기나 노트북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기업들은 그러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이 안정적이긴 하나 수익률이 너무 낮다"며 차입을 통한 대규모 투자에 착수했다. 대만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업체인 TSMC는 2000년 43억달러를 투자해 시설을 증설했다. 한국 반도체업계 전체의 투자규모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2위인 UMC도 24억달러를 투자하면서 대만의 민간투자 증가율은 1분기 18.41%, 2분기 27.13%까지 급등했다.
◇레버리지 휴유증 심각=하지만 업황에 민감한 구조로 변모했다. 세계 PC 수요가 예상치의 80% 수준에 그치고 반도체가격이 하락하자 자금 압박에 처한 대만기업들은 출혈 수출에 나서야 했다. 그 타격은 해당 기업에 그치지 않았다. 52개 은행의 부실채권비율과 연체율이 급등하면서 위기가 확산됐다. 특히 레버리지는 연구·개발(R&D) 수준을 높이는 게 아니라 생산설비를 늘리는 규모의 경제에 초점을 둔 것이어서 부작용이 컸다.
이를 힘겹게 극복해오던 대만 반도체산업이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금융위기에 다시 흔들리고 있다. 대만의 5대 D램업체는 지난해 1∼3분기 39억~320억대만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부채비율도 대부분 200%로 높아졌다. 대만 D램업체의 총부채는 4000억여대만달러에 달하며 그중 은행 여신액은 약 2700억대만달러로 파악된다.
KOTRA 관계자는 "대만 D램기업들이 하나 둘 정부에 구제를 요청하기 시작하고 정부도 적극 개입해 위기를 대처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며 "올해는 평판 디스플레이 산업도 구제를 요청할 정도로 위기가 심각해 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