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리지, 폐기 말고 이용하라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반준환 기자 2009.01.0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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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출발! 2009]금융시스템, 새로운 도전<1>

세계경제가 탐욕에 물든 신용팽창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빚을 내 투자하고 씀씀이를 키운 레버리지 잔치가 끝나자 가계는 물론 전분야에서 차입이나 부채규모를 줄이는 차입축소(디레버리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계든 기업이든 이제는 생존을 위해 빚을 줄여야 하는 '디레버리지' 과제를 놓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레버리지 잔치는 끝났다"=미국은 2000년 정보기술(IT) 거품이 붕괴되자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를 대폭 내렸다. 2004년까지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를 유지했고, 그 결과 풍부한 유동성이 주식과 부동산시장으로 몰렸다. 무주택자들이 내집 마련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빚을 내 주택을 구입하기 시작하면서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서울 강남에만 부동산 불패신화가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도 부동산 불패 기대가 있었고,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는 사람들을 멍청이 취급했다. 소득은 그다지 늘지 않는데 집값이 오르자 부자가 된 줄 알고 소비를 줄이지 않았다. 올라간 집값 차이를 담보로 은행 융자를 받아 소비를 이어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월가의 금융회사들도 차입비용이 낮아지자 레버리지를 활용해 자산을 부풀렸다. 특히 미국 투자은행들은 복잡한 구조의 주택담보대출 관련 파생상품 투자에 집중하며 수익을 극대화했다. 도이치방크, UBS 등 유럽계 은행도 예외가 아니었다.



차입을 통해 월가 투자은행 따라잡기를 시도했고, 미국의 자산유동화증권을 투자했다. 그 결과 레버리지 비율이 약 50배에 달했다. 하지만 신용경색으로 인해 유동성이 갑자기 수축되면서 융자를 받아 집을 산 이들이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거품이 남긴 유산=이번 금융위기 역시 월가의 탐욕이 부른 거품의 붕괴로 요약된다.

앞서 1630년대 초반 네덜란드는 탐욕이 지배했다. 사람들은 튤립에 대한 '묻지마 투자'에 나섰다. 튤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더 비싸게 되팔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튤립 붐은 결국 신용의 위기, 투기꾼의 몰락으로 끝났지만, 네덜란드 경제가 이 충격에서 벗어나는데 여러 해가 걸렸다.


1690년대 영국의 주식회사 설립 붐과 이에 따른 투기, 그리고 1840년대 철도 투기에도 탐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철도를 유망한 성장산업으로 본 시민들이 철도회사의 주식을 경쟁적으로 사들였다. 철도 붐은 곧 버블 붕괴로 이어졌고, 수많은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1920년대 미국 마이애미 지역에서 벌어진 부동산 투자 열풍도 거품과 그 붕괴에 따른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미국 경제는 제1차 대전이 끝나고 호황을 구가했고, 금리가 떨어지자 새로운 투자처를 찾던 사람들이 플로리다주로 몰렸다. 마이애미 해변이 본격 개발됐고, 해안은 물론 땅, 습지까지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러나 1926년 가을 마이애미에 태풍이 덮쳐 개발지역이 파괴됐고, 지나친 가격상승을 우려한 사람들이 매물을 내놓기 시작했다. 단기 매매이익을 노리고 투자한 사람들이 손을 빼자 거품은 빠른 속도로 붕괴됐다.

거품이 붕괴되면서 투자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1840년대 영국의 철도 거품이 붕괴되자 철도회사 주식은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1920년대 마이애미 부동산 투자 광풍 역시 투자자들의 몰락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당시 활발히 놓아진 철길은 수많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운송비 절감을 통해 다른 산업 발전의 촉매제가 됐다. 철길을 통해 지역과 도시간 경제가 통합됐고, 낙후됐던 영국 북부지역이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1848년 유럽을 휩쓴 혁명의 물결 속에서도 영국이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철도 붐'과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1920년대 마이애미 부동산 거품은 사라졌어도 결국 플로리다라는 세계 최대 휴향 도시를 만들어냈다. 거품이 모두 악은 아닌 셈이다.

◇한국의 사례=한국경제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초고속성장을 한 데는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자원을 직접 배분한 정부의 역할이 우선 컸다. 하지만 진취적인 도전정신을 지닌 기업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삼성, 현대, LG 등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돋움한 그룹에는 뛰어난 역량을 지닌 창업주들이 있었다.
 
이들이 기업을 일궈낼 수 있었던 배경은 자본력, 즉 레버리지의 적절한 활용 덕분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국가는 외국자본을 차입해 기업들에 지원, 잠재력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민간도 자체적으로 외자를 차입하는 한편 유망한 사업에 '집중'해 효율을 극대화했다. 국내 주요 그룹 가운데 차입을 통한 신규사업 진출하고 시설투자 및 연구·개발(R&D)을 통해 한꺼번에 여러 단계를 뛰어넘은 성장을 한 사례가 많다.

물론 국내기업들도 과도한 레버리지의 부작용이 얼마나 큰 지 외환위기를 통해 생생히 경험했다. 차입경영을 통해 무분별하게 외형을 키운 굴지의 기업들이 당시 줄줄이 문을 닫거나 다른 기업에 넘어갔다. 이 여파로 대기업은 부채의 대대적인 축소에 나섰다. 30대그룹의 부채는 지난 97년말 307조원에서 99년 244조원으로 줄었다. 부채비율은 489%에서 164%로 불과 2년새 325%포인트 급락했다.



문제는 기업들이 자의반타의반 레버리지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운전자본과 설비투자까지 억제해 수익성이 되레 떨어졌다는 점이다. 양날의 칼인 레버리지가 잘못 쓰였쓸 때 충격을 단적으로 입증한 사례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레버리지를 단순히 외부차입을 늘려 사업을 한다는 의미로 봐서는 곤란하다"며 "기업가정신과 결합해 창조적인 방식으로 부가가치를 올릴 때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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