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부터 2003년까지 12년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1996년과 2000년의 '반짝 호황'을 제외하고는 줄곧 2%를 넘지 못했다. 2004년부터 2%대 성장세를 회복했지만 지금 일본은 미국발 경제위기에 휘말려 다시 침체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고'시대가 찾아와 수출이 어려워지자 일본 정부는 내수부양을 위해 일본은행에 기준금리를 내리라고 압박했다. 등이 떠밀린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1985년 5%에서 1987년 2.5%로 낮추며 돈을 풀었다. 이 결과 일본의 땅값은 1985년부터 1990년까지 4배가 뛰었다.
일본 정부는 처음에 자산가치 급락으로 인한 부실채권 증가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경기가 살아나면 부실채권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것으로 보고 초기에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은 것.
일본 정부는 1990년대 중반에야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고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하락)이 경제 전체로 확산돼 기업도 개인도 지갑을 꽁꽁 닫은 뒤였다. 기업들은 땅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투자를 미뤘고 개인은 물가가 더 떨어지길 기대하며 소비를 자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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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아무리 풀어도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이다. 1999년말 당시 일본의 가계 금융자산은 총 1400조엔, 현금·예금 등 저축성 자산은 750조엔에 달했다. 그러나 이 돈들은 저축통장이나 장롱에 박혀있을 뿐 좀체 소비로 연결되지 않았다. 이것이 일본의 1990년대 연평균 성장률이 1.7%에 그친 배경이다.
내수를 띄우기 위해 일본 정부는 17조9000억엔 규모의 공공·재정사업, 6조엔 규모의 감세정책을 총동원했지만 때를 놓친 정책은 통하지 않았다. 심지어 1999년 15세 이하 자녀를 둔 저소득층 가구주 3500명에게 무려 7000억엔 어치의 '상품권'까지 나눠줬지만 소비는 살아나지 않았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1996년 성장률이 3%로 오르며 반짝 호황이 나타나자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소비세율을 인상하는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렀다. 소비세율 인상은 내수를 다시 침체의 늪으로 몰고 갔다. 예산 분배를 둘러싼 일본 의회 내 기득권 싸움도 경기부양의 효과없이 막대한 재정적자만 쌓이게 만든 원인으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