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환율종가 얼마?" 치열한 눈치보기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황은재 기자 2008.12.2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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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당국 위력 발휘…은행들 달러매수 늦춰

기러기 아빠인 L씨(모 대기업 자금팀장·46)는 최근 휴가를 내고 미국에 있는 부인과 두 자녀를 보기 위해 출국했다. 올 하반기 내내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함에 따라 미국 방문은 물론 송금조차 어려웠지만 환율이 1300원 아래로 내려감에 따라 다소 여유를 갖게 됐다.

L 팀장은 1년 6개월 가량 미국에 있는 가족을 보지 못했는데, 그동안 넉넉하게 생활비를 송금하지 못한 것도 사과할 겸 미국행을 결심했다. 환율이 더 떨어지면 내년에 찾아갈 생각도 했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컸다.



연말로 다가가면서 환율이 빠르게 내려가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그동안 달러 과매도 등으로 신규 달러매수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매수를 되도록 늦춘 채 연말 환율 종가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환율이 급락하고 있는 이유는 외환시장 참여자들이 연말을 앞두고 '일년 농사'를 마무리 지으며 관망세로 돌아서는 가운데 외환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29일에도 36원 급락하며 1200선에 다가섰다.



연말 환율은 기업, 은행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기업과 은행들은 회계년도말 환율 즉 올해 마지막 거래날인 30일 종가를 재무제표상 원화 환산 기준으로 삼는다.

지금까지 환율 상승으로 외화부채와 외화자산에서 장부상 환산손실을 냈다면 연말 종가 이후 '확정손실'로 기록해야 한다. 따라서 조선업체, 키코(KIKO,환헤지 통화옵션상품) 피해업체 등 대규모 환산손실을 예상했던 기업들은 연말 환율이 내려갈수록 이롭다.

한 시중은행 외화자금팀장은 "은행은 물론 기업들이 30일 확정될 연말 환율 수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은행 입장에서 환율이 내려갈수록 외화부채의 원화 환산액이 줄어들어 그만큼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높아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 외환시장에서는 외환당국의 환율하락 의지와 개입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며 "외환딜러들은 변동성 확대를 통한 차익 실현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연말이 다가오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동시에 외환당국이 단호하게 개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아울러 "은행들은 지난 9월 이후 단기 외화부채 상환 압박을 심하게 받았지만 지금은 이것이 상당부분 해소되며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달러를 모아둘 필요를 새롭게 느끼고 있다"면서 "하지만 연말 환율이 더 내려갈 것으로 판단, 대부분 은행들이 달러 매수를 내년으로 미루고 있다"고 전했다. 연말을 지나 내년에는 달러를 보다 좋은 조건으로 조달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



외환딜러들은 최근 외환당국이 29일 최소 5억 달러에서 최대 7억 달러 규모의 개입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날 전체 거래량이 33억 달러 규모인데, 5억달러 어치의 개입은 흐름을 좌우할 물량이라는 해석이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30일 종가의 경우 정유사 등을 비롯해 결제수요가 많다는 점이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며 "30일에도 종가 관리를 위한 외환당국의 개입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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