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 급락을 방치했다간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이 확산되면서 자칫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투기 차단'은 뒷전으로 밀려 향후 경기회복시 '투기 열풍'이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2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주택) 시장이 안정되는 지금 같은 시기에는 과거에 했던 시장원리에 반하는 정책들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며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 3구만 주택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로 남겨두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8일 "전세계적으로 주택 등 자산의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강남3구에 대한 투기지역 지정을 해제하는 방안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정부는 그동안 주택가격 급락을 막아야 한다는 국토부의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투기재발을 우려해 강남3구에 대한 투기지역 해제 등 추가적인 규제 완화에는 반대해왔다. 그러나 최근 용인 등 일부지역의 집값이 급매물을 중심으로 고점 대비 40% 가까이 떨어지는 등 집값 하락세가 심상치 않자 강 장관 주도로 입장을 선회했다.
디플레 확산에 따른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논리가 '투기 차단'이라는 논리를 눌렀다. 일본의 상업지역 토지 가격은 1989년 자산 버블이 붕괴된 뒤 92∼96년 매년 20% 가까이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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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자산가격이 장기간 하락할 경우 기업들 입장에서 토지 가격이 추가로 하락할 것을 기대하고 투자를 미루는 '투자이연' 현상이 나타난다. 또 자산가격 하락이 소비재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면 소비자들 입장에서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이 더 떨어지길 기대하며 소비를 미루는 '소비이연' 현상도 벌어진다. 이런 경우 경제 전체는 돈을 아무리 풀어도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진다.
실제로 주택가격 하락이 소비를 짓누르는 효과는 주가 하락과는 비교가 안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추정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실질주택가격이 1% 떨어질 경우 민간소비는 0.18% 위축된다. 이는 실질주가가 1% 떨어질 경우 소비가 0.03% 위축되는 것과 비교할 때 6배의 영향력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주택시장에 투기가 나타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그러나 기회를 기다리며 숨어있는 유동성이 상당하기 때문에 내년 하반기 이후 경기가 회복될 때 주택 투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