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1조 달러 '상각의 덫'에 걸리다

홍혜영 기자 2008.12.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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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기획 3-<1>]경제위기 어디까지 왔나?

월가, 1조 달러 '상각의 덫'에 걸리다


2005년 2월 어느날. 월가의 내로라 하는 전문가 50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골드만삭스, 도이치뱅크, 씨티그룹, 베어스턴스, JP모간체이스 등 5개 은행의 트레이더와 변호사들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모기지 상품을 설계하는 방식과 거래 규칙에 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 △ 헤지펀드가 미국 주택시장 약세에 베팅하도록 허용키로 했다. 여기에 △ 기관투자가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 투자로 높은 수익을 올리도록 하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



이날 회의는 월가에는 '달콤한 독'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연계된 파생금융 상품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월가와 전 세계 금융시장은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 월가, 독을 집어 삼키다 = 월가 금융회사들은 넘치는 유동성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전 세계 자원과 곡물시장, 심지어 미국 전체 금융시장 규모의 2%도 되지 않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에까지 손을 뻗쳤다.



자산유동화증권과 파생상품은 적절히 사용되면 순기능을 발휘한다. 기업들은 보다 나은 조건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의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의도로 개발된 금융 혁신상품들은 인간의 탐욕이 더해지며 일순 독이 됐다. 기대 수익률이 과도하게 높아지면서 투자는 투기로 변모했다.

전체 금융시장에는 금세 이 독들이 전이됐다. 동화, 재유동화를 통한 끝없는 위험 자산 떠넘기기, 통제가 없는 고레버리지(지렛대 효과) 투자, 단기 채무를 이용한 장기 투자 등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금융시장은 병들기 시작했다.

◇ 상각 상각…또 상각 = 신용경색으로 채무자가 대출을 갚을 수 없는 지경에 빠지자 투자은행들은 잇따라 자산을 상각(writedown)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3분기 처음으로 메릴린치가 50억 달러, 씨티그룹이 60억 달러 상각을 발표했다. 시장은 안도했다. 하지만 독을 다 걸러낸 게 아니었다.

직후 메릴린치는 손실이 84억 달러로, 씨티는 110억 달러로 늘어났다고 다시 발표했다. 투자자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이 역시 정확한 규모는 아니었다. 급기야 씨티의 개리 크리텐든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애널리스트들에 "복잡한 투자상품의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다"며 "2주 뒤에 어떻게 변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고백을 했다.



대형 은행들은 유동화 전문 자회사(SIVs)라는 투자회사를 통해 4000억 달러를 위험한 대출에 투자했다. 이중 씨티그룹이 가장 심했다. 씨티는 자산을 상각하다 하다 못해 지난달 아예 SIVs의 부실 자산을 인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170억 달러가 넘는 규모다.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 신용버블, '상상금지' = 최근의 위기는 1998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 붕괴에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그 당시 1000억 달러 규모의 포지션중 위험 자산은 100억 달러에 불과했다. 지금 위기에 따른 손실을 그 때의 100배에 달한다.

부동산 기술주 정크본드 등등 수많은 거품을 맛봤다. 하지만 신용버블은 차원이 다르다. 실물 자산대비 신용의 비율이 급상승 한다는 것은 레버리지, 즉 금융 위험이 기하학적으로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용위기 이후 금융권의 자산 상각액은 1조 달러에 이른다.

지난 16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시작된 지난해 6월부터 지금까지 상각액은 9927억 달러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20억 달러의 상각이 발생한 셈이다.

이후 골드만삭스와 모간스탠리가 4분기 각각 21억 달러, 22억 달러의 손실을 발표했다. 유럽 은행들 역시 실적과 함께 추가 상각 규모를 발표하고 있어서 금융사들의 상각액은 이미 1조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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