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년이 지난 지금, 워싱턴과 월가의 태도는180도 바뀌었다. 미국 사모투자펀드와 헤지펀드들은 앞다퉈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를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꼭 10년 전,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서양 자본에 목을 매야 했다. 그 뒤 다시는 이들에게 자비를 구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방대한 양의 통화를 비축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국부펀드다. 정부기구는 아니지만 정부 산하의 사모투자펀드나 다름없다.
미국은 이제 이 국부펀드들에 '구걸'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까지 왔다. 국부펀드는 지난해 여름부터 올 1분기까지 미국 금융시장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
중국은 블랙스톤그룹 지분에 투자했다. 또 틈틈히 유수 투자은행 매입에 눈독을 들여왔다. 국부펀드 외에 억만장자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왕자는 지난달 현재 4% 미만인 자신의 씨티그룹 지분을 5%로 늘릴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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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다비투자청이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칼라일그룹의 데이비드 루빈스타인 대표는 이미 지난 4월 "세계 경제의 중심이 미국과 유럽에서 아시아와 중동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제 국부펀드들조차 슬슬 미국을 외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달러를 집중적으로 긁어모으던 국부펀드이 달러 비중을 줄이기에 나선 것이다.
올 7월 이후 '2차 신용경색'으로 은행주들이 몰락하면서 국부펀드들의 손실도 커졌다. 미국을 믿을 수 없어지면서 더이상 달러화 자산을 사들일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모간스탠리 지분을 확대하려던 중국 CIC는 국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계획을 원점으로 돌렸다. 쿠웨이트, 아부다비 등 중동 국부펀드도 속속 "월가 은행들에 투자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이머징 시장의 자금 수혈이 없이는 미국 금융권이 살아나긴 힘들어 보인다. 미국의 목숨이 국부펀드에 달린 셈이니 대반전이다. 한 때 아시아 각국을 먹여 살렸던 '구세주' 미국이 이들의 힘으로 갱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