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공급만이 능사가 아니다

장영규 우리투자증권 리스크&크레딧 센터장 2008.12.1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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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View]구조조정없으면 진통제에 불과

편집자주 자본시장 발전에 신용평가는 인프라와 같은 존재입니다. 서브프라임사태로 신용평가의 공정성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 것도 신용평가의 중요성을 재차 일깨우는 사건입니다. 더벨은 신용평가를 포함해 크레딧시장의 전반을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각을 통해 분석합니다. 신용이슈 등 일련의 현상에 대해 폭넓은 이해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기사는 07월18일(08:35)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금융위기가 닥치고 나서 전세계적으로 어찌 보면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완화, 지원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미 의회에서 자동차회사들에 대한 지원이 1차적으로 부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지원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보여주듯 이런 정책방향에 대한 당위성에 전세계적으로 심정적 동조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 하다.

통화정책의 순응적 선회



우리나라 역시 정부의 다급한 행보에 비해 그 동안 미온적이다 싶을 만큼 위기상황임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던 한국은행도 12월 들어서는 전향적인 통화정책의 완화를 실시하고 있다. 12월 금통위에서의 유례가 없는 1%의 금리인하는 한국은행의 입장이 바뀌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주에는 은행 CD금리를 낮추려는 정부의 노력에 호응하는 CD매입용 자금방출도 규모를 늘려 시행했다.

이런 움직임은, 현시점에서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상대적 유용성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일단 통화정책당국의 현실인식 또는 대응전략이 달라졌다고 읽을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문제는 이런 매크로사이드의 정책이 충분한 혹은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물론 현재가 위기국면이라는 점과 예상을 넘어서는 정책적 유도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누구나 동의하지만 문제는 필요성이 아니라 충분성이다. 더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다른 측면의 고려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읽느냐 하는 점이 중요할 것 같다.

위기의 초기상황은 모두 알다시피 시스템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이 수반된 금융시장 전체적인 유동성 문제가 주된 이슈였다. 그러나 은행권의 유동성 압박이 완화되면서 현재의 문제의식은 그 색깔이 다소 달라져 있다. 한쪽은 은행의 유동성이 자본안정성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제도적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이와 결부되어 금융시장 내 자금의 흐름이 정상화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문제는 이 흐름의 이슈가 단순히 자금의 공급을 늘린다고 해서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통화신용의 완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위기의 초기에 정작 서브프라임 문제가 발단이 된 미국에서도 필자가 느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위기의 본질 가운데 하나를 ‘신뢰(confidence)’의 문제라고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결국 위기의 정상화가 자금흐름의 정상화가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면 이 신뢰의 문제를 넘어서지 못하고서는 자금흐름의 정상화도, 위기의 해소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국내시장에서 신뢰란 무엇에 대한 신뢰일까. 초기에는 이 문제가 은행권 중심의 제도권 금융기관의 상황에 대한 신뢰의 부족이었다. 이때의 문제는 금융기관, 특히 은행의 상황에 대한 정보의 부족으로 인한 미지에서 오는 불안감이었다. 자연스럽게 이런 부담은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오히려 건설업을 중심으로 개별산업, 개별기업의 불안정성 쪽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 AA급 건설업체가 대주단의 채무연장대상으로 가입되는 상황은 채권투자자의 입장에서는 밤길을 더듬어가는 갑갑함과도 같다. 시장 전체적인 유동성 리스크는 이제 신용 리스크로 전이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런 흐름은 위기의 해소 내지 상황의 안정화가 이루어 질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또 다른 측면은 어느 정도가 바닥일까. 혹은 바닥 이후의 상황이 어떨 것인가 하는데 대한 불확실성이다. 소위 U자형이 될지, V자형이 될지 아니면 모두 걱정하는 L자형이 될지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적다. 최근 필자가 만난 외국 이코노미스트 한 사람은 작고 급속한 회복 이후 저성장국면이 오래 지속되는 루트(제곱근)형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문제는 불확실하다는 것과 바닥을 확인해야 신뢰가 회복세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닥을 보다 명확히 하거나 신뢰를 높이는 길은 필요한 수준의 구조조정이다. 아프지만 그 필요성과 효과가 중요하다는 점을 우리는 이미 10년 전에 겪은 바 있다. 구조조정이 없이 충격과 아픔을 완화시키는 거시적 정책은 일시적 진통제에 그칠 뿐 건강한 회복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 이웃인 일본의 경우에서 이미 지켜본 바 있다.



시장이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의 마이크로 사이드의 실행이 없다면 시장의 불확실성을 완화시키기는 어렵다. 그렇게 된다면 통화당국은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의 부담을 지속적으로 직면할 수밖에 없다. 통화유통속도의 저하는 통화정책의 유용성을 제약하고 소위 유동성함정의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진행하게 된다.

문제는 위기상황에서의 전체적인 구조조정을 하는 데는 결단력과 추진력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설득력의 필요성과 위험부담이 따를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10년 전의 경험은 우리에게 자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채일 수밖에 없다.

유동성 공급만이 능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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