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결건조후 미세 분해…매장·화장 대신?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09.01.0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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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친환경 장묘법 '빙장'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영화 <터미네이터 2-심판의 날>을 본 사람이라면 미래의 사이보그 'T-1000'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몸이 자유롭게 변형되는가 하면 어떤 누구와도 똑같은 모습으로 복제되는 로봇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패스트푸드점에 둘러앉아 영화이야기로 몹시 흥분했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 대부분은 T-1000이 운반차에서 흘러나온 액화질소에 얼면서 온몸이 부숴지는 장면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사람을 얼린 뒤에 그런 식으로 깨부수는 것이 가능할까?”
“끔찍한 소리 하지 마. 사람을 부순다는 게 말이 되냐?”

그런데 얼마 전 이와 같은 원리의 장례방식이 현실화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른바 빙장(氷葬)이다. 화장의 반대 개념으로 시신을 얼린 다음 잘게 부숴 매장하는 장례방식이다. 우리 정서상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장례법이 곧 현실화될 수 있다는 보도에 논란이 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시신·관 급속냉동, 1년 이내 토양화

빙장은 인간의 사체 등 유기물을 동결건조 처리해 흙으로 돌려보내는 장묘 방식이다. 이 방식은 우선 시신을 분해 가능한 관에 넣은 다음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탱크에 담가 급속 동결시킨다. 이어 미세한 진동을 통해 동결된 시신과 관을 미세한 조각으로 분해시킨다.

분해된 조각을 건조시켜 수분과 금속성분을 분리한 뒤 유해를 녹말로 만든 관에 안치한다. 이 관을 땅에 묻으면 1년 이내에 완전히 토양화된다.


화장을 통해 수목장을 하면 그동안 인체를 산화시켜 나온 인 등에 의해 뿌리가 썩는 단점이 있다면 빙장을 이용하면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오히려 식물에게 양분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수목장에 적용하면 더욱 유리하다.

스웨덴의 생물학자인 수잔 위 메삭에 의해 발명된 이 장묘 방식은 세계 180여개국에서 국제특허를 획득한 상태다.



◆생태 오염없는 친환경 장묘

빙장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기존의 매장이나 화장에 비해 친환경적이라는 점이다. 빙장에 관한 특허권을 갖고 있는 스웨덴 프로메사오거닉에이비의 한국지사격인 프로메션 코리아에 따르면 빙장은 매장에 비해 적은 면적을 이용하면서 화장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나 수은, 다이옥신 등 대기오염 물질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매장법이나 화장법에서 발생하는 하천ㆍ해양오염도 막을 수 있다.

특히 질소분해방식을 사용하면 토양에 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무 밑에 시신의 유해를 묻는 방식인 수목장을 활성화시키는 역할도 할 수 있다고 회사측은 강조하고 있다.
동결건조후 미세 분해…매장·화장 대신?


빙장은 유네스코가 추천하는 친환경 장묘법이면서 유엔이 선정한 40대 유망 친환경 사업에 속한다. 실제로 스웨덴이 내년 4월 빙장법 시행을 앞두고 있고 영국,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을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등도 빙장에 관한 법률을 검토하고 있다.



분해 방법이 장묘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유기물이라면 모두 분해가 가능하기 때문에 동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조류독감에 걸린 폐기용 가축 분해에도 요긴하게 쓸 수 있고 음식물 쓰레기 분해에도 효용도가 높다. 게다가 잔존물은 퇴비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친화적이기도 하다.

향후 다른 산업으로의 확대 가능성이 높아지자 몇몇 대기업에서도 빙장기의 사업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프로메션 코리아는 우선 장례 문화에 초점을 맞춰 거부감을 없앤 뒤 다른 용도로 이용하는 편이 사회 정서상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아직 빙장기의 확대 이용까지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



◆한기총 후원, 국회 법안 발의 중

전국 62개 교단, 4만개의 교회, 가입된 신도수만 1200만명에 이르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빙장법 통과에 적극적인 후원자다. 3년 전 교단 대표임원 30명이 새로운 장묘문화에 대한 의사결정을 한 상태이며, 지난해 9월에서는 합동 총회 임원 2000여명의 의결을 거쳐 빙장법에 관한 입장을 결정한 바 있다.

한기총이 빙장법을 기독교 장례방식의 하나로 선택한 이유는 ‘인간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성경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매장이나 화장도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는 원리는 같지만 좀 더 친환경적인 매장법이라는 점에서 적극 찬성하고 있다.



행정안전위 소속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실은 지난해 7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민생법안이 많아 연내에 처리되지 못했지만 올해 국회 통과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은재 의원실 관계자는 “그간 대선정국과 민생법안으로 상임위가 열리지 못해 상정되지 못했다”면서 “한나라당 지도부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야당에서도 특별한 반대가 없어 다음 회기 때는 통과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자체 관심, 활성화에 시일 걸릴 듯



최근에는 빙장이 공동묘지 면적 확대문제나 화장장 처리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청계산 등에 화장장 건립을 반대하는 일부 단체에서는 빙장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역 주민과의 문제를 절충할 수 있는 카드가 빙장이라는 의견이 나오자 지자체도 관심을 표명하고 나섰다. 손성경 프로메션 코리아 대표는 “서울시, 경기도, 충청남도 등 많은 지자체가 자료를 요청하고 있고, 공원묘지개발사업 분야나 화장터 건설로 주민과 갈등을 빚고 있는 곳에서도 문의전화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교 의식이 뿌리박힌 우리 사회에서 빙장이 쉽게 받아들여지겠느냐는 회의론도 있다. 화장장들도 시장 잠식을 우려해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또 16억원에 이르는 빙장기기의 값에 대한 비용문제와 유해의 부산물이 많다는 점도 문제다.



이에 대해 이은재 의원 측은 “국민에게 장례방식의 선택권을 넓혀준다는 취지에서 발의했으며, 환경이나 국토이용 등 국익에 우선한다면 도입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의원측은 그러나 “국민 정서상 받아들일 수 있는 장묘문화로 자리 잡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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