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거래 끊길라 수입중단도 못해"

머니투데이 최은미 기자 2008.12.1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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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쇼크, 수술대란오나]<2>재료 도매업계 파산위기

수술재료를 수입하는 도매업계가 파산의 위기에 몰렸다. 수술재료를 수입해 병원에 공급하는데 환율 상승으로 수입가격이 최고 2배까지 치솟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다. 처음 한 두 달은 곧 괜찮아지겠지하는 마음에 손해를 감수했지만 환율이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수입 중단을 결정하는 업체가 나오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원/달러, 원/엔 등 환율 급등으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수술재료수입업체들이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구조조정은 물론 수입을 중단하는 등 개점휴업 상태인 곳도 부지기수다.



환율이 2배 가까이 상승한 일본에서 수입하는 품목은 상당부분 중단된 지 오래다. 미국제품으로 대체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필수 수술재료는 대부분 건강보험 급여항목으로 정부가 정한 상한가 내에서 수입업체가 적정한 가격을 책정, 병원과 거래한다. 그런데 환율상승으로 수입가격이 정부 상한가를 넘어서며 도매업계가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현재 건강보험에 적용되는 치료재료는 7900여품목이다.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에서 치료재료 비용으로 지급한 돈만 1조4000억원에 달한다.



김홍선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전문위원은 "대부분의 업체들이 예전에 미리 수입해 둔 재고로 연명할 뿐 새로 수입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병원에 공급되는 수술재료들 중 3분의 1은 업체들이 적자를 감수하면서 조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료를 직접 제조하는 국내업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조에 필요한 원재료 대부분이 국내에서 조달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국적사의 한국지사들 또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수술재료를 팔아 본사로 송금해야 하는데 환차손이 심해 많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본사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겨우 연명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한 다국적사의 한국지사가 사무실을 보다 싼 곳으로 옮겼다.


모 업체 관계자는 "작은 곳들은 소리없이 정리되고 있다"며 "규모있는 업체들도 인력감축 등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갖가지 방책을 쏟아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의 경제상황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처럼 우리나라나 아시아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데 있다. IMF 사태 때는 수입처인 미국이나 유럽 회사들이 한국의 어려운 상황을 감안, 수출가를 낮추거나 수금기일을 연장하는 등 부담을 덜어줬는데 지금은 본사도 어렵기 때문이다.



안과재료를 공급하는 모 도매상 임원은 "자기 코가 석자인 상황이라 우리나라 사정까지 봐줄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라며 "최근들어 국내 업체들의 자금 사정이 안좋아지자 선금을 주지 않으면 물건을 보내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기까지 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렇다보니 IMF때보다 체감경기 온도가 더 낮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환율대란을 피해 수입중단을 검토하는 것도 쉽지 않다. 수입중단은 어렵게 확보한 병원 거래선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병원에 납품대금 인상이나 일시 공급중단을 이야기하면 병원이 다른 업체로 거래선을 바꾼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대부분 업체가 손해를 감수하며 버티는 것은 오로지 병원과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모 대리점 사장은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는 공급하는 업체가 하나라도 남을 때까지는 두고 보겠다는 방침"이라며 "업체들만 죽어나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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