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시장]로스쿨 성공하려면···

김평우 변호사 2008.12.0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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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시장]로스쿨 성공하려면···


내년 3월이면 전국 25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 2000여 명의 신입생을 받아 개원을 한다. 3년 후면 졸업생 중 상당수가 변호사 자격을 취득, 법조계에 진입할 예정이다.

현행 사법연수원제도는 폐지된다.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도 40여 년간 계속된 사법연수원 제도를 버리고 미국식 로스쿨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를 비롯한 많은 법조인들은 로스쿨 제도가 변호사 숫자만 늘리고 실무교육은 황폐화시켜 변호사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나아가 빈곤한 변호사를 대량 배출,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법치주의를 퇴보시키는 재앙의 씨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로스쿨은 기본적으로 변호사 지망생의 직업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로스쿨 졸업생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국가가 시행하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다는 구조다.

미국이 변호사 교육을 민간교육기관에 맡기는 것은 변호사의 업무범위 즉 직역이 매우 넓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고객이 의뢰하는 모든 형태의 사무는 특별한 법적 제약이나 금지가 없는 한 모두 변호사의 업무로 인식된다.

로스쿨 졸업자의 직역이 이처럼 넓다 보니 로스쿨 졸업자인 변호사 자격자의 숫자에 별반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변호사의 직역은 매우 제한적이다.


수사업무, 재판업무와 국제거래업무에 참여하는 정도다. 그 밖의 각종 법률사무 업무는 법률사무직의 직역과 중첩돼 변호사의 진입이 사실상 어렵게 돼 있다.

변호사 직역이 제한된 상태에서 변호사업 종사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 변호사의 상당수는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현상이 불가피하다. 지난 8년간 우리나라의 신규 개업변호사 수는 3000여 명으로 이전 40여 년간에 배출된 개업변호사 수와 맞먹는다.

최근에는 최소한의 생활비도 벌지 못해 빚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신용불량 변호사가 속출하고 있다. 2012년부터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대량 쏟아져 나온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지난 정부에서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이면에는 이 제도가 한국의 전통이나 법제, 경제여건에 적합해서가 아니라 고소득직업인 변호사 직업을 다수에게 개방해 가능한 소득을 골고루 나눠야 한다는 평등주의적 계산이 크게 작용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로스쿨 제도는 변호사 직업이 고소득 직업임을 전제로 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 전제는 이미 수년전부터 보편적 진실이 아닌 소수의 변호사에게만 적용되는 제한적 진실이 됐다.

미국형 로스쿨 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정착하려면 로스쿨 졸업자가 최소한 일반 대학원 졸업자 보다는 높은 소득을 얻거나 아니면 어떤 직업에도 쉽게 취업할 수 있어야 하는 취업 기회의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미국처럼 변호사를 거친 사람 중에서 판·검사를 선발하는 이른바 법조일원화가 도입돼야 한다. 배심재판도 활성화돼야 하며 미국처럼 변호사의 직역에 제한이 없어야 한다.

변호사 수만 증하고 변호사 직역이 계속 제한되면 빈곤층에 몰린 젊은 변호사들이 수년전 의약분업 파동 때의 젊은 의사들처럼 삭발투쟁을 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런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는 로스쿨을 통한 변호사 수의 증가에 상응, 변호사의 직역을 미국식으로 넓게 확대·개방하는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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