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개입, 외국인 배만 불린다고?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11.24 17:08
글자크기
- 환율 끌어내리면 외인 환산손익 증가
- '환율 폭등→주가 폭락→환율 폭등' 악순환 우려
- "정부, 걱정말고 과감하게 개입해야"

"당국이 달러화를 풀어 원/달러 환율을 낮추면 주식 팔고 떠나는 외국인들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 될 수 있다"(국제금융센터 관계자)



"환율 급등을 방치하면 외국인들 사이에 한국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키워 오히려 외국인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전직 고위관료)

정부와 한국은행의 외환시장 개입을 놓고 두가지 시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정부로서는 '딜레마'다. 환율을 잡자니 "외환보유액 축내 외국인만 돕는 꼴"이라는 비판이 무섭고, 가만 두자니 "환율이 폭등하면 외국인 엑소더스(대탈출)가 재현된다"는 경고가 두렵다.



어느 쪽이 맞을까? 최근 여론은 "환율 개입이 외국인 배만 불린다"는 쪽으로 쏠리고 있다. 실제로 당국이 외환보유액의 달러화를 쏟아부어 환율을 낮추면 외국인은 한국 주식을 팔아서 바꿔갈 수 있는 달러화가 늘어난다. 환율 개입이 외국인에게 자금이탈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주장도 그래서 나온다.

환율 개입이 중기적으로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최근 당국의 지속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지난달 30일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발표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24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주말보다 18.0원 오른 1513.0원으로 마감했다.

이런 가운데 환율 개입의 '실탄'으로 쓰이고 있는 외환보유액은 지난달말 2122억달러로 전월 대비 274억달러나 줄었다. 대부분 은행권 외화자금난 해소를 위한 지원에 쓰인 것으로 향후 회수가능한 것이지만, 외환보유액 감소에 따른 시장의 심리적 불안은 피하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각) 페루 방문 중 리마에서 "외환은 건드리면 안 된다. 가만 놔둬야 한다"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환율 급등을 방치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져 외국인 주식매도가 더 늘어나고, 환전 수요 때문에 다시 환율이 급등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몰고 온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외환보유액 등에서 다소간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이 악순환을 끊어야 파국을 피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가장 우려하는 것은 환율이 초과상승(오버슛팅)할 가능성"이라며 "최소한 '환율 폭등→주가 폭락→환율 폭등'의 악순환은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전직 관료는 "정부가 환율 폭등을 막을 수 있는 통제력을 갖고 있다고 외국인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가 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하는 순간 외국인들은 외환위기 때처럼 앞다퉈 탈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코스피시장의 외국인 주식 보유액은 140조원으로 1000억달러도 안 된다"며 "외국인 주식투자자 이탈로 외환보유액이 바닥날 가능성은 없는 만큼 정부는 좀 더 과감하게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외국인 투자자들로 하여금 한국에 계속 머물거나 다시 투자하게 만들려면 오히려 안정적인 '퇴로'가 열려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외국인이 원화를 달러화로 원활하게 바꿔나갈 수 있도록 국제수지 적자로 인한 달러화 부족분은 외화보유액으로 메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계 자산운용사의 한 임원은 "그동안 우리가 한국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온 것은 언제든 자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며 "만약 외환시장에서 자금회수가 어렵다면 앞으로 한국에 대한 투자를 줄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