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단협약, 정부·은행·건설사 엇박자..왜?

더벨 길진홍 기자 2008.11.2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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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채권은행·자금지원 선정 등 가이드라인 제시해야

이 기사는 11월24일(13:58)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건설사 유동성 지원을 위한 대주단 협약이 정부와 건설사, 은행권이 서로 불신하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은행연합회가 지난 18일 설명회까지 열며 대주단 가입을 독려했지만, 다수 건설사들은 업체평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신규 자금지원이 보장돼야 한다며 버티고 있다.

정부는 겉으로는 건설사 지원과 관련된 모든 일은 주채권 은행이 판단할 일이라며 한발 빼는 양상이지만 속내는 청와대까지 나서서 대주단 협약을 독촉하고 있다.



‘건설사구하기’라는 뜨거운 감자를 떠안은 은행권은 일손을 놓고 건설업계와 정부 눈치만 살피고 있다.

◇대주단 '채무유예' vs 건설사 '신규 자금지원 선지원'

청와대 개입설까자 불거지며 2라운드로 접어든 대주단 협약은 신규 자금지원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건설사들은 대주단 협약 신청의 전제 조건으로 주채권 은행이 신규 자금지원을 보장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채권유예도 중요하지만 당장 회사를 꾸려나갈 운영자금이 더 급하다는 얘기다.

은행권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재무건전성이 뛰어난 건설사는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채권 미회수에 따른 손실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주단은 한계기업에 대한 신규 자금지원은 구조조정 등의 특수한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특히 대주단 내에서 건설사 대출 만기연장은 주채권 은행 몫이지만 신규 자금지원 금융사는 채권액 규모와 관계없이 결정된다. 결국 건설사에 대한 신규 자금지원은 주채권 은행 뿐 아니라 대주단 전체의 여신부담이 된다고 봐야 한다.

시중 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도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라 국제결제은행의 기준 자기자본비율(BIS) 하락을 무릎 쓰고 불량 건설사에 신규 자금지원을 해주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건설업계는 정부지원이 중소기업과 형평성 측면에서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정부의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의 경우 유동성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원 대상으로 분류된 A,B등급은 채권 은행단의 75%이상 동의가 있으면 신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지원 자금은 신보와 기보가 업체당 최대 10억~20억원을 보증, 은행권의 여신부담도 덜하다.

대한건설협회 진광현 팀장(경영기획실)은 "은행마다 중소기업 지원 창구는 유동성 지원을 신청하려는 업체들로 북적이고 있다"며 "정부에서도 건설사 신규 자금지원을 위한 별도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채권은행 판별 기준 모호, 건설사만 '혼란'

채권액 규모에 따라 매월 바뀌는 주채권 은행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주단의 주채권 은행은 은행연합회가 매달 전월 말 채권액을 기준으로 선정한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가입 시기에 따라 주채권 은행이 바뀔 수 있는 셈이다

주채권 은행의 선정 방식도 문제다. 은행연합회가 집계하는 금융회사의 채권액은 펀드와 파생상품을 통한 자금조달 내역은 빠져 있다. 은행연합회가 공시한 주채권 은행과 실제 주채권 은행이 다를 수 있는 셈이다.

이처럼 애매 모호한 주채권 은행 선정 기준은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부의 가입 독려에도 불구하고 일부 건설사들은 속칭 ‘코드’가 맞는 주채권 은행을 찾기 위해 대주단 협약 신청 시기를 늦추고 있다.

A건설사는 이달 초 대주단 협약을 신청했다가 금융권의 주채권 은행 떠넘기기로 결국 부도위기에 직면했다. 채권 부실을 우려한 은행권이 해당 건설사에 대한 주채권 은행 업무를 꺼려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불투명한 주채권 은행 선정 기준은 은행들이 책임회피를 위해 빠져 나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며 “건설사들의 채권신고를 취합해 정확한 주채권 은행 선정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 대주단 운용 가이드라인 제시해야

은행권과 건설업계는 정부가 대주단 협약 운용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규 자금지원 범위와 주채권 은행 선정 기준은 물론 건설사들에 대한 등급 평가기준도 먼저 공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월드건설 조영호 상무는 “건설사에 대주단 협약 신청은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대한 일"이라며 "정부가 무작정 대주단 협약 신청을 독려할 게 아니라 건설사들이 이해득실을 따질 가치 판단의 잣대를 먼저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세부적인 평가기준과 운용 방침을 먼저 공개하고 나서기는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대주단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대주단 운용 방침을 정하고 밀어붙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며 “정부가 각 업계 요구를 받아들여 교통정리를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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