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은행에 채찍보다 당근을

머니투데이 정희경 금융부장 2008.11.2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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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애 최대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이달 초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밝힌 경제진단은 우리나라에 적용해도 틀리지 않는다. 외환위기를 통해 다져진 펀더멘털로 최악의 '외풍'을 견뎌낼 것이라는 기대는 점차 약화되는 분위기다.

미국과 일본 유럽 세계 3대권이 마이너스 성장에 빠져드는 상황에서 성장세를 지속하기란 결코 간단치 않다. 당장 경제의 바로미터인 금융시장이 외부요인에 크게 흔들린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안전지대를 찾거나 유동성 확보를 위해 국내 주식과 채권을 팔아치우면서 환율은 치솟고 주가는 급락하고 있다. 20일 한때 보인 달러당 1500원의 환율은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내년 주요국 경제가 올해보다 어려워질 것이란 예상이 우세한 만큼 금융시장의 불안은 실물경제에 보다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반토막 이상 잘려나간 펀드로 개인투자자들이 주머니를 닫고 있고, 환율이 급등하는데도 성장의 버팀목이었던 수출은 뒷걸음질한다. 주식시장에선 오를 종목보다 떨어지지 않을 종목을 찾는 투자자들이 보인다고 한다. 심리가 얼어붙었다는 방증이다. 내수와 외수 모두 위축되는 한 한국 경제의 현상유지는 어렵다.



이제는 흔들리는 낙관론에 기대 불안해 하기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경제 전반의 '완충력'을 높이는데 주력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전례 없는 위기를 넘으려면 서민이나 실직자를 위한 재정 확충 못지않게 금융회사, 특히 은행의 건전성을 제고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요즘 원화 및 외화유동성 압박에 시달리는 은행들을 향해 화살이 쏟아진다. 외환위기 당시 막대한 혈세를 지원받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거나, 흑자도산 위기에 빠진 기업들을 방치한 채 제 살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은행의 어려움은 실상 기업이 그만큼 힘들다는 증거며, 은행 때문에 기업의 형편이 더 악화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은행은 실물경제를 움직이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은행을 중심으로 금융시스템이 허약해지면 그 충격은 기업이나 가계의 부실 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정부가 엄격한 규제를 통해 은행 등의 건전성을 감시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위기가 닥쳐 은행과 기업 가운데 하나를 구제해야 한다면 은행이 우선이다.


미국을 시작으로 주요국들이 금리인하 외에 은행에 대해 유동성 공급, 국유화, 예금 전액 보장, 선순위 무담보채권 지급보증 등 파격적인 조치를 펴는 것도 경제의 척추격인 은행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국내 은행들은 최근 중소기업 등 기업대출의 연체율이 높아지고,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등 자본완충력이 떨어지면서 대출에 몸을 사리고 있다. 고금리로 후순위채를 대거 발행하고, 예금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상황에서 대출 확대를 독려하려면 '매'를 들기보다 후순위채를 직접 매입해주거나 자본을 보강해주는 '당근'이 급선무다. 그게 우리 경제의 완충력을 높이는 길이다. 무리한 외형확대 경쟁으로 유동성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묻는 것은 은행이 안정된 후 해도 늦지 않다. 현재 위기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종류라면 정부나 감독당국의 대응이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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