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운용사, 펀드보수인하 바람에 ‘울상’

머니투데이 임상연 기자 2008.11.1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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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사 비해 수익구조 취약...구조조정 불가피
- 감독당국ㆍ여론 의식 울며겨자먹기식 동참 고민
- 업계 "전형적인 포퓰리즘...감독당국이 시장 망친다"

중소형 자산운용사들이 펀드 운용보수 인하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정부당국과 투자자들의 펀드 보수인하 ‘불똥’이 판매사에서 운용사로까지 튀면서 은행계 자산운용사들을 중심으로 운용보수 인하 바람이 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형사들에 비해 수익구조가 취약한 중소형 운용사들은 보수 인하가 곧 구조조정으로 연결될 수 있는 중차대한 사항인데도 정부당국과 여론의 힘에 떠밀려 억지 춘향격으로 보수를 내려야 할 판이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운용보수 인하로 국내 펀드산업이 후행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지만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정부당국의 ‘으름장’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운용보수도 줄줄이 인하
18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SH자산에 이어 KB자산, 미래에셋자산 등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잇따라 기존 펀드의 운용보수를 인하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KB자산운용은 2조원 규모의 국민은행 단독펀드들을 대상으로 운용보수를 10% 가량 인하할 방침이며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스텝다운 방식 등 보수인하 방법을 놓고 고민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SH자산운용은 신한은행 단독펀드 4개에 대해 운용보수를 10%씩 인하하기로 했다.

대형사들을 중심으로 운용보수 인하가 본격화되면서 중소형사들도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보수 인하를 검토하고 있는 상태다. 중위권 자산운용사 한 대표이사는 “현재 시장 분위기상 한 곳이 내리면 모두가 따라 내려야 할 판”이라며 “더욱이 감독당국까지 나서서 보수 인하를 촉구하고 있어 난감하다”고 하소연했다.


자산운용업계 전체적으로 펀드 운용보수를 10% 정도 인하할 경우 대형사보다 중소형사들의 피해가 클 수 밖에 없다. 국내 펀드 시장은 ‘부익부 빈익빈’이 심한데다, 중소형 운용사는 대형사에 비해 수익구조도 열악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07회계연도 52개 자산운용사의 총 순이익은 5043억원으로 이중 71% 가량을 상위 10개사가 차지했다. 특히 업계 1위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경우 한 해 순이익이 상위 10위권 밖에 있는 42개 운용사들의 전체 이익과 맞먹는 수준이다.



중소형사 구조조정 불가피
펀드 운용보수는 지금도 낮은 수준이라 더 낮출 경우 중소형사들의 영업수지가 크게 악화될 수 밖에 없다. 국내 주식형펀드의 평균 운용보수는 0.68%로 미국(0.79%), 영국(1.15%), 호주(1.5%) 등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반면 판매보수는 평균 1.99%로 여타 국가들에 비해 두 배 가량 많다.

A자산운용사 한 고위관계자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펀드 순자산이 급감한 상황에서 그나마 낮은 운용보수를 더 낮추게 되면 영업수지가 크게 악화돼 중소형사나 신생사는 구조조정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판매사 뿐만 아니라 운용사들까지 제살깎기식 보수 인하에 나선 것은 금융위원회 등 감독당국이 업계 현실을 무시한 채 보수 인하를 강력히 요구한데 따른 것이다. 전광우 금융위 위원장은 지난 12일 주요 증권사와 운용사 사장단을 불러 놓고 “투자자들과 고통분담 차원에서 판매보수와 운용보수를 낮춰라”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업계관계자는 “정부당국의 운용보수 인하 요구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 비난하며 “운용보수 인하로 영업수지가 악화되면 이는 곧 펀드 운용에도 악영향을 미쳐 결국엔 투자자들까지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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