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몬빠가'가 인정받아야 노벨상 나올 것"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2008.11.1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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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초대석]두산그룹 유치한 박범훈 중앙대 총장

언제부터인가 발전기금을 얼마나 유치했느냐가 대학 총장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됐다. 송자 전 연세대 총장을 필두로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 등이 1000억원 안팎을 유치하며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다.

이른바 'CEO 총장'이 대세인 시대에 중앙대학교는 2005년 작곡과 지휘가 주 전공인 예술가를 총장으로 맞이했다. 예술 전공자가 4년제 종합대학의 수장을 맡은 것은 대한민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낙하산이 아닌 직선제로.



남들이 'CEO 총장' 모시기에 혈안일 때 중앙대는 속칭 '딴따라' 총장을 모셨으니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주위의 비아냥거림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 '딴따라' 총장이 큰일을 냈다. 두산그룹을 학교의 새 주인으로 영입하며 한 방에 1200억원을 유치한 것.

중앙대 '제3의 도약' 토대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국악계의 거목 박범훈 총장을 만나 대학교육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다. 인터뷰 전날 '아시아의 소리' 연주회에서 앵콜 포함 8곡을 지휘하고 새벽 2시까지 '뒷풀이' 자리를 가졌음에도 '열혈청년'처럼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고 몸에서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본업이 예술인데 대학경영이 이제는 익숙해지셨는지.
▶근본적인 것은 결국 화합이고 마음이더군요. 경영도 사람이 하는 것이어서 (구성원들로 하여금) 마음을 먹게 하면 됩디다. 제 전공이 창작과 지휘여서 변명 비슷하게 늘 말하지만 대학에서 창작은 생명이고, 지휘는 화합입니다. 창작과 지휘가 전공이니까 그런 특징을 대학경영에 잘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일을 해 왔습니다.

-박용성 이사장이 총장직선제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한 걸로 들었습니다.
▶총장직선제 폐지에 대해 저는 찬성합니다. 직선제가 처음 생겼을 때는 민주화의 한 과정이었고 저도 좋게 봤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민주화가 됐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박 이사장이 진행하고 있는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저는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경쟁대학만큼 월급을 보장할 테니 교수든 학생이든 제 역할을 다하라는 게 핵심입니다. 재단도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 재단에 대해 학교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식물재단이라며 빨리 물러가라고 난리를 치던 교수들이 두산이 들어오니까 환영한다고 하면서 ‘교수에게 자유를’, ‘기업처럼 운영하지 마라’고 주장합니다. 말이 안되는 얘기죠. 연구 안하고 교육 부실하면 교수 그만둬야 되는 겁니다. 이게 안 되니까 교수들이 자꾸 ‘철밥통’ 소리를 듣는 것 아닙니까.

(박 총장은 그 자신 교수이면서 '교수다루기'의 어려움에 대해 자주 토로한다. 지난달 펴낸 ‘추임새’라는 책에서 “벼룩 서 말은 몰고 가도 대학교수 세 명은 못 데리고 간다는 말을 실감한다”고 표현했다. 대학측에 시스템 개혁을 주문한 박 이사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기업 하듯이 대학 경영하면 큰일 난다고 주변에서 말을 많이 들었는데 (개혁)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곳이 대학이라는 것을 조금 알게 됐다”며 어려움을 얘기했다. 주변에서는 “성질 급한 박용성이 학교 가서 도 닦는다”고 놀린다고 한다.)



-지난 4년을 평가한다면 몇 점 정도를 주실 수 있는지.
▶제가 총장을 맡은 4년 전은 국가적으로도 교육정책이 가장 활발하게 변화하던 때입니다. 백화점식으로 벌려놨던 종합대학을 갑자기 카이스트처럼 연구중심 대학 체제로 바꾸라고 했고 거기에 끼지 못하면 대학 행세를 못하는 것처럼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또 저출산율이 걱정되니까 입학정원을 2000명씩 줄이라고 했습니다. 대학에서는 학과 이름 바꾸기도 힘든데 우리가 8개 학과를 없앴어요.

이런 식으로 교육제도가 급변할 때 총장을 맡아서 성과도 냈습니다. 정원은 작지만 로스쿨을 유치했고, 경영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 약학전문대학원도 정착시켰습니다. 힘들었지만 재단을 새롭게 영입한 것도 무엇보다 큰 성과입니다. 그리고 서울 근교에 제3캠퍼스인 하남캠퍼스를 세우는 MOU도 맺었습니다. 재단이 힘을 못주고 교체되는 어려운 시기에 총장 역할을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이런 평가는 받는 것 같습니다.

-두산그룹을 영입한 것에 대해 학생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교수들은 반발도 있다고 하던데요.
▶학내 게시판에는 ‘이사장님 오래오래 사세요’, ‘환영합니다’ 같은 글들이 많아요. 왜냐하면 먼저 재단 때 엄청나게 힘들었거든요. 예전에는 ‘왜 우리 등록금으로만 학교를 운영하느냐’고 반발했지만 지금은 ‘우리도 내겠다, 그 대신 재단도 제대로 재단 노릇을 해 달라’고 주문합니다. R&D센터를 기공하고, 기숙사도 짓는 등 재단이 약속을 이행하니까 학생들도 마음에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교수들도 재단이 새로 들어오는 것에는 100% 찬성합니다. 그걸 아주 갈망해 왔으니까요. 다만 교수업적평가 등 개혁을 진행하는데 있어 말들이 좀 나오고 있긴 합니다. 교수들 의견이 다양하니까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지요.

-대학이 연구중심으로 가는 것은 긍정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82%가 대학을 가고 있고 교육열이 세계 1위인데 세계대학 안에 제대로 끼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우리가 교육열의만 있었지 세계하고 경쟁해야 하는 교육 커리큘럼은 제대로 못 잡았기 때문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전부 외국 유학을 보내 인재를 키우려고만 했지 대학을 키울 생각은 못한 것이죠.

그래서 연구중심대학으로 몰고 갔는데 갑자기 몰고 가니까 혼돈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종합대학은 계열별로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공계 중심 대학은 이공계 중심대학끼리, 인문사회는 인문사회끼리 경쟁을 붙여야지요. 전문소매점과 백화점을 같이 경쟁시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중앙대는 앞으로 어떤 분야를 키우실 생각입니까.
▶중앙대만의 독특한 학문과 교육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연구도 그런 쪽으로 집중하려고 해요. 갈수록 ‘융합’이 중요해지고 있는데 저희로서는 유리합니다. 공대, 자연대, 의대, 약대가 연구중심으로 묶여 R&D센터에서 시너지를 낼 겁니다. 또 우리가 인문사회 쪽이 강하고 문화예술은 톱 수준입니다. 이런 특징적인 분야는 특징적인 것으로 키워 나갈 겁니다. 잘 크는 나무에 거름을 더 줘야 한다는 게 제 철학입니다.

-일본은 올해에만 노벨상을 4명이나 수상했습니다. 교육자로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내가 한 고생을 자식들한테 물려줄 수는 없다는 게 우리 교육열의 뿌리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본에는 ‘센몬빠가’라는 말이 있어요. 전문바보. 한 번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앉아 있으면 전쟁이 나도, 나라가 망해도 자기 연구에만 몰두하는 그런 교육열이 일본에는 있습니다. 그 정도로 한 분야에 심층적으로 바보스럽게 몰두하고 연구를 하는 것이죠.

지금 교육정책에서 교육과 과학이 함께 묶였잖아요. 과학 쪽에서는 그런 얘기를 합니다. 우리도 전문적인 연구를 바보처럼 길게 할 수 있도록, 심층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 달라고요. 우리도 앞으로 이런 게 조금씩 쌓이면 괜찮아질 거라고 봅니다.



-인연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인연이 사람 사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인연으로 내가 이 세상에 나왔고 평생을 살아가는데 부부의 인연도 중요하고, 따지고 보면 온 세상 인류가 인연으로 엮인 것 아닙니까. 한 번 만나서 맺어진 인연은 소홀히 생각하지 마라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인연에는 호연도 있고 악연도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좋은 인연을 맺어야 하고 좋은 인연을 맺으려면 남을 비방하지 말고, 나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을 생각해 줘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추임새라는 책을 썼어요. 상대방을 인정해 주고 잘한 것은 잘했다고 추켜 세워주고 아니면 비방이라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회구조라는 것이 그런 게 없을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인연이 더 소중하지요.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졌는지.
▶제가 그걸로 한참 동안 시달림을 받았는데…. 제가 도와드린 건 별로 없어요. 서울시장 하실 때 제 전공분야에서 회의참석하고 그런 게 전부였어요. 대선 때는 문화예술정책 입안자로 도와달라고 했는데 현직 총장이라서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더니 전공분야의 사람들이 떳떳하게 이런 정책을 펴달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설득해서 수락했습니다. 그랬더니 ‘폴리페서의 대왕’처럼 학교에서 난리가 나서 시달림을 좀 받았는데 저는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해 전혀 후회하거나 개의치 않습니다.



-문화부장관에는 관심이 없으신지요.
▶총장 임기부터 마쳐야죠. 제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총장 말고 문화예술인으로서 욕심이 굉장히 많아 보이십니다.
▶제가 욕심이 있는 것은 제 작품입니다. 어제도 제 작품을 오랜만에 연주했는데 제가 인사말로 그랬어요. 악보를 오랜만에 보니까 결재판으로 보인다고. 제가 보직에 욕심이 있었으면 아마 총장을 못했을 겁니다. 안 한다고 안 한다고 진심으로 하니까 된 것 같아요.

불교에서도 비워야 채워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꽉 차면 더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갈 수가 없지요. 그래서 항시 비워라,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비우라고 스스로에게 얘기합니다. 채우려고 비우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비우면 채워진다는 게 여태껏 제 경험에서 깨달은 것입니다. 고향에 조그맣게 연수원을 짓고 있어요. 제자들하고 모여서 작품 쓰고 연주하고 인생을 예술가로 마감하는 게 목표입니다.



(대담=방형국 전국사회부장, 정리=최중혁 기자, 사진=이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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