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약처방' 시가평가 유예, 도입되나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11.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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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가평가, 제2 리먼 사태 '뇌관'
- "회계투명성 저해, 시장신뢰 훼손 우려"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장외거래(OTC) 파생상품에 대한 '시가평가'(mark-to-market) 유예 방안은 세계경제의 동반몰락을 막기위한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시가평가는 자산가치를 현 시세대로 재무제표에 즉각 반영하는 것인데, 이것을 유예하면 당장 시가평가에 따른 대규모 손실을 피할 수 있다. 전세계 금융회사들의 연쇄파산을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회계 투명성을 희생하자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는 뛰어나지만, 금융시장 전반에 대한 신뢰 저하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논란이 불가피한 사안이다. 그러나 금융시장 불안이 더욱 거세질 경우 '고육지책'으로 도입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 제2 리먼 사태 '뇌관'= 지난달 6일 미 하원이 70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안을 통과시킬 때 마지막까지 논란이 된 것이 '시가평가'였다. 많은 의원들이 구제금융안 처리의 조건으로 시가평가 유예를 요구했다. 금융사들에 대한 시가평가 회계가 '제2의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몰고 올 수 있는 '뇌관'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실제로 지난 9월15일 파산보호를 신청한 리먼브러더스의 경우 시가평가가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파산 직전 발표된 리먼브러더스의 3분기 순손실은 39억달러. 시가평가로 인한 손실이 78억달러로 다른 이익을 모두 갉아먹고도 남았다.

그러나 미 정부가 시가평가 유예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결국 미 의회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시가평가제를 한시적으로 유예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 핵심은 CDS= 현재 시가평가 회계가 가장 큰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가 신용부도스와프(CDS) 시장이다. CDS는 채권의 부도위험만 따로 떼어내 거래하는 파생상품으로, 그 위험을 떠안은 쪽은 위험부담의 대가로 일종의 보험료(프리미엄)를 받는다. 일종의 '부도위험 보험'인 셈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올 6월말 현재 전세계 CDS의 미결제 잔액은 약 55조달러에 달했다. 지난해 전세계 국내총생산(GDP) 규모 54조6000억달러(미 중앙정보국 추정)와 맞먹는 수준이다.

지난 9월 CDS 시장의 4대 큰손이었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자 '거래상대방 위험'(카운터파트 리스크)이 급증하면서 부도위험을 나타내는 CDS 프리미엄이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서 시가평가가 그대로 적용될 경우 CDS에 대해 상당한 규모의 당기손실 처리가 불가피하다.

◇ "신뢰 훼손 우려"= G20(선진+신흥 20개국) 3대 의장국 중 하나인 우리나라는 영국, 브라질과 함께 내년 3월말까지 시가평가 유예를 포함해 파생상품의 위험축소 방안을 논의해 초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만약 다음 G20 회의에서 시가평가를 일시 유예하는 제도를 채택키로 합의된다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가 이를 도입하게 된다.

또 미국, 유럽 선진국들이 시가평가 유예 제도를 도입할 경우에도 국제기준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최근 시가평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금융상품의 범위를 넓힌데 이어 시가평가 자체를 유예하는 방안까지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금융위는 주요 선진국들이 시가평가 유예를 허용할 경우에 한해 우리나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시가평가를 유예할 경우 회계투명성 저하에 따른 금융시장의 신뢰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시가평가 유예는 사실상 손실을 숨기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가뜩이나 금융시장에서 신뢰가 무너져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시가평가가 지난 2001년 '엔론 회계부정 사태' 이후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의무화된 제도라는 점에서 시가평가 유예는 시계바늘을 엔론 사태 이전으로 되돌리는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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