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우 전 경제부총리와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 등 정재계 원로들과 SK그룹 전현직 임원 등 수백 명의 사람들 사이로 한껏 치장을 했지만 세월의 무게는 속일 수 없는 십여 명의 할머니들이 추모식장에 입장했다. 추모식 자리도 SK현직 임원들 보다 앞자리에 배치돼 궁금증은 더해갔다.
"지금 이 자리에는 고(故) 최종건 회장과 함께 땀흘렸던 선경직물 여공작업반장들의 모임인 유정회 회원님들이 자리를 함께 하고 계십니다" 할머니들은 고 최회장과의 추억이 담긴 빛바랜 흑백 사진이 등장 할 때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추억을 떠올렸다.
최 회장은 직접 유정회 회원들이 앉은 테이블로 찾아와 일일이 손을 맞잡은 후 "추모식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유정회 회원님들이 노력하신 덕분에 SK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전직 SK임원들도 유정회 회원들의 테이블로 찾아가 안부를 전했다.
할머니들은 한 잔의 와인에 붉어진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때 우리 공장 사람들이 모두 몇 명이었지?" "700명은 족히 넘었을 걸"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할머니들은 얼굴의 주름살과는 상관없이 직물 기계 앞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처녀시절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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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원 회장은 추모사에서 "풀 한포기 변변찮았던 황무지에서 아버님께서 꿈꾸고 열정을 쏟았던 것들이 이제는 많은 결실을 맺게 됐습니다" 고 했다.
황무지에서 오늘날 매출 80조를 달성한 SK의 성장에는 섬유에서 에너지로, 통신으로 끊임없이 변화를 이끌어온 경영진의 능력도 탁월했지만 국내 섬유산업 사상 첫 수출을 기록했던 선경직물 여공들의 땀과 노력이 깃들어져 있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고(故) 최종건 회장의 35주기 추모식에서 선경직물 여공작업반장들의 모임인 유정회 회원들을 주인공으로 대접한 이번 추모식은 그래서 한층 의미가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