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를 받치고 기업의 부도를 막으려고 은행의 대출을 늘리게 하다간 금융건전성이 훼손돼 자칫 '금융위기'를 맞을 수 있다. 반면 금융건전성을 챙기느라 대출 축소를 방치해도 '기업 줄도산'으로 공멸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 지금이 꼭 그런 상황이다.
일단 정부는 은행의 팔을 비틀어서라도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게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은행 역시 까딱하다간 '부실' 문제에 빠질 수 있는 처지여서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경쟁적인 '우산 뺐기'로 인한 공멸은 피하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는 부실은 사전에 조금씩 털어내는 '운용의 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중소기업 현장대책회의에서 "은행이 과연 필요한 돈을 제때 풀어 줄지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도 "정부가 돈을 풀어도 은행 창구에 가보면 아주 냉정하다"며 은행들을 압박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해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면 결국 다 같이 죽는 것"이라며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가 대출을 독려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 은행 "부실 커지면 책임질거냐"= 그러나 은행들도 '내 코가 석자'인 상황이다. 과거 13%에 이르던 국민 우리 신한 하나 4대 시중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3분기말 일제히 12% 아래로 떨어졌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신한은행만 11.9%일 뿐 나머지는 모두 11% 이하다. 국민은행은 자사주 매입의 영향이 크지만 9.8%로 아예 10%에도 못 미친다. 자칫 대기업 하나만 무너져도 4대 시중은행의 BIS 비율이 모두 10%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중소기업이 아니라 자신의 부실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지난 '10.21 대책'을 통해 부실징후가 있는 건설사에게도 만기연장 등을 통해 돈을 계속 대주도록 한데 이어 일반 중소기업에도 자금지원을 계속하도록 하자 은행들로선 난감한 상황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외환위기 직전에도 정부가 시켜서 대출을 해줬다가 결국 은행들이 부실을 뒤집어썼다"고 말했다.
김기환 플러스자산운용 대표는 "정부가 부실을 끊지 않고 계속 끌고 가는 정책을 펴면서 우리나라 은행들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믿음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며 "일부 부실기업을 끊어내지 못해 은행들까지 부실화되면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