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르네상스, 궤도 올랐습니다"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2008.11.1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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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초대석]한국 IT의 '선구자' 오명 건국대 총장

-"입시경쟁률, 외부연구비 급격히 상승...달라진 위상 실감"
-"국제화·연구실적 임기중 결실...융합학문에 역량 집중"
-"잘 살게 됐는데 갈등은 더 커져...고른 인재배치 필요"

‘無(무)’에서 ‘有(유)’를 만들어 내는 이들이 있다. 자동차의 정주영, 철강의 박태준, 반도체의 이병철 같은 이들이 그렇다. 이들은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으로 불가능을 현실로 바꿨다.



건국대가 삼고초려 해서 모셔온 오명 총장 또한 대한민국 IT의 ‘정주영’이요, 이병철이다. 전화기가 드문 시절 이미 수 백만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전자식 전화교환기 개발을 주도했고 4메가D램 반도체, 슈퍼미니컴퓨터, 대전 엑스포 등이 그의 손을 거쳐 빛을 발했다. 첫 우주인 배출 사업도 그가 과학기술부 장관이던 시절 추진됐다.

이처럼 미지를 개척해 온 이력으로 고집스런 ‘독불장군’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의외로 오 총장의 리더십은 부드럽다. ‘정보의 시대에는 나를 따르라는 리더십은 안 된다’며 윗사람보다 아랫사람을 보며 일할 것을 주문한다. 참여정부와 인연이 없던 그가 과기부총리가 된 것도 아랫사람(일반 공무원)들의 압도적 지지 덕분이었다.



그의 부드럽고 조용한 개혁은 대학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그가 취임한 뒤 외부연구비 수주 규모가 두 배로 뛰었다. 지난 9일 교육과학기술부의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육성사업’ 중간평가에서 7개의 과제가 선정돼 ‘톱10’ 안에 들었다. 외국 우수대학과의 교류협정 체결 수도 2년여 동안 74곳이 늘었다.

정보통신 혁명의 기틀을 닦은 데 이어 ‘건국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는 오 총장을 만나 교육 및 과학기술 현안에 대해 의견을 들어봤다.

-최근 4년 임기의 반환점을 도셨는데 소감이 어떤지.
▶최근 건국대의 입시경쟁률과 외부 연구비 수주가 급격히 높아졌다. 언론 보도나 입시기관들의 평가에서 확연히 달라지고 있는 위상을 실감하고 있다.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른 대학, 성장 잠재력이 가장 큰 대학이라는 사회적 평가를 받게 된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일이다.


-취임 당시 건국대를 세계 수준의 명문대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히셨는데.
▶건국대가 제일 취약한 게 국제화다. 20등, 30등 밖이었는데 2년 뒤면 10위권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학은 또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다행히 외부연구비 수주가 엄청나게 늘었다. IT(정보), BT(바이오), ST(우주공학), NT(나노) 기술융합 연구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선두주자가 됐다. 국제화와 연구, 이 두 분야에서는 임기 중 결실을 보는 게 가능할 것이다.

-스타시티 개발 성공에 대해 다른 대학들이 많이 부러워하고 있다.
▶스타시티는 건국대의 꿈을 담은 상징물이자 미래를 여는 열쇠다. 롯데백화점이 최근 문을 열었고 ‘더 클래식 500’도 내년 3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능동로 개발사업까지 완료되면 ‘건국타운’이 형성된다. 학교법인이 직접 보유한 상가, 백화점 등에서 매년 300억원 안팎의 임대수익이 발생하는데 학교발전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세계 최초로 U-캠퍼스를 구축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건국대의 와이브로, 유비쿼터스 캠퍼스 구축은 대학문화 변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무선인터넷 기술 발전에도 상당히 의미가 있다. 학생들이 버스나 지하철, 또 강의실 밖 캠퍼스 어디에서나 휴대인터넷으로 동영상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건국대 전철역과 스타시티, 건국대 병원, 건국대 캠퍼스를 연결해 이 일대가 ‘유비쿼터스 서울’의 테스트 베드가 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대학자율화 등 이명박 정부가 추진 중인 교육과학기술 정책을 평가하신다면.
▶중요한 것은 퓨전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 해도 육사 경험 덕분에 지행합일의 덕목을 기를 수 있었다. 말하자면 공과대학에서 경제, 경영, 리더십 교육을 많이 시켜 공학인재들도 경영적 마인드를 가져야 하고, 인문사회 계통도 기술 지식을 접목시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한쪽만 교육해서는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이공계 문제도 이런 퓨전교육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건국대가 공학과 경영학을 접목시킨 기술경영(MOT)학과를 만드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여러 분야를 두루두루 거치셨는데 대한민국의 비전과 성장동력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
▶결국 성장동력은 과학기술에서 나온다. 어려워도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 현재 GDP 대비 3.3%인데 세계 3번째로 많다. 1, 2위는 북유럽 조그만 나라들이니 경제규모가 큰 나라 중에서는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미국, EU, 러시아, 중국, 일본과 함께 ITER(국제열핵융합실험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높은 가치의 프로젝트를 잘 활용하면 성장동력으로 삼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잘 살게 됐는데도 국민적 갈등은 더 커진 것이다. 너무 빨리 발전해서인지 매우 조급해하고 불만을 못 참는다. 모두가 대통령, 장관, 의사, 변호사가 되고 싶어하니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미국만 해도 간호사, 경찰, 소방대원 등 꿈이 소박하다. 무조건 대통령, 의사가 돼야 하고, 무조건 이겨야 하는 사회는 건전한 사회가 아니다. 요즘 직장에서도 동료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사실 도와주고 융화되고 헌신하는 이가 진짜 인재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교육이다. 우수 인재가 다양한 분야에서 골고루 육성되도록 해야 한다. 물고 뜯고 싸워서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됐다고 후손들에게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최근 전 세계적 금융위기 등으로 자본주의가 시험대에 올랐다. 가슴과 온정이 없는 자본주의가 비판받듯이 인간성이 배제된 기술에 대해서도 우려가 높은데.
▶당연한 얘기다. 너무 급하게 나가다 그런 부분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두 가지가 당연히 병행돼야 한다. 그런데 유비쿼터스의 경우 우선 리드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뒤쳐지기 시작하면 회복이 어렵다. 산업사회 진입에 뒤쳐져 일본과 미국을 따라잡는 게 불가능해지지 않았나. 유비쿼터스 분야도 마찬가지다.

-건국대 졸업생이 사회에서 어떤 평가를 받길 바라나.
▶첨단과학시대의 지식수명은 매우 짧다.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을 남보다 앞서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학교는 튼튼한 학문적 기초교육과 균형잡힌 교양교육을 통해 어떠한 상황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와 자기학습능력을 갖춘 지성인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취임 이후 개설해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100분 100강’ 교양 프로그램도 바로 이런 관점에서 만든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장관 하마평에 많이 오르내리셨다. 임기가 끝난 뒤 계획은.
▶이제 좀 쉬려고 한다. 개인 취미 즐기면서. 정치 쪽은 예전에도 몇 번 기회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1940년생 △경기고·육사·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 공학박사 △체신부 차관, 장관 △원자력안전기술원 이사장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교통부, 건설교통부 장관 △국립암센터 이사장 △동아일보 사장, 회장 △아주대 총장 △과학기술부 장관 겸 초대 부총리 △건국대 총장

(대담=방형국 전국사회부장, 정리=최중혁 기자, 사진=최용민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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