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채무 지급 보증 등 큰 도움을 줬는데도 정부정책에 적극적으로 화답하지 않느냐는 투다. 중소기업 지원 실적이 떨어지면 분명한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도 놓았다. 여전히 은행 문턱이 높다는 중소·수출기업들의 아우성이 끊이지 않고 있는 탓이다. 은행 감독권이 없던 한국은행까지 은행들을 조사하기로 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10일 "정부가 한계기업들에 대한 추가대출을 압박하고, 주택담보대출을 늘리라고 요구하는 등 은행 부실화를 심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며 "솔직히 최근 정부의 압박은 정치색이 좀 있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출 연체율도 0.1%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영국계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이날 한국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것도 은행들의 외채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감독당국은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부채나 다름없는 후순위채권이 은행들의 체력강화에 도움이 안된다며 발행을 자제시켰다. 지금은 후순위채 발행을 독려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한자릿 수로 떨어지려 하자 보완자본을 동원토록 한 것이다. BIS 비율이 한자리수로 떨어지는 것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은행들의 경영 건전성 확보가 시급하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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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당시의 경험도 은행들의 행동을 '굼뜨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정부 말 듣고 대출 해줬다 부실이 커지면 누가 책임지느냐" "중소기업 지원 해야죠. 옥석을 가려서. 은행 망할때까지…."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다. 당시 정부 지시대로 기업 대출에 나섰던 은행들은 문을 닫거나 통·폐합됐고, 그렇지 않았던 은행들은 살아남아 강자로 성장한 '경험'이 생생한 탓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말이 패스트 트랙(패스트 트랙·신속지원)이지 한번 지원하는데 협의회를 구성하고 보증서 끊고 하는데 최소 3개월이 걸린다"며 "정부가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 보다는 은행 건전성을 위해 선별적 지원을 해야 하는 만큼 기다릴 줄 아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오히려 은행권의 신속한 한계기업 정리를 막고 있다는 볼멘 목소리도 나온다. 살만한 기업에 대한 지원을 독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국가 및 은행 신용등급 평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의 임원은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로 전이되면서 정부의 방침대로 건설사나 조선사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며 "정부가 신용평가에 민감해져 구조조정 기업 정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 향후 더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