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韓등급전망 하향, 은행 해외빚 때문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11.10 16:36
글자크기
- 아시아에서 한국만 '부정적' 하향
- "은행의 외채상환 어려움 가능성"


영국계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우리나라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것은 한국 은행들의 외채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외채의 만기연장이 어려워지면서 한국 은행들이 외채를 서둘러 상환해야 할 경우 대외신인도가 훼손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신용등급 전망 하향조정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내년 4월 연례협의 때 신용등급 자체를 낮출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은행 외채 문제의 경우 이미 추진 중인 정부의 1000억 달러 지급보증 외에 마땅한 추가 대책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피치의 이번 신용등급 점검에서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떨어진 나라는 아시아에서 한국이 유일했다.

함께 신용등급 전망이 낮아진 말레이시아의 경우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조정된 것이었다. 그것도 주요 수출품인 석유의 가격이 떨어졌다는 것이 말레이시아의 신용등급 전망이 낮아진 이유였다. 중국, 대만, 태국, 인도는 신용등급과 신용등급 전망이 모두 현행대로 유지됐다.



이밖에 신용등급이나 신용등급 전망이 하향조정된 나머지 나라들은 최근 '도미노 국가부도' 우려가 제기된 동구권(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카자흐스탄)과 중남미(멕시코 칠레) 국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아시아에서 유독 한국만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낮춰진 이유는 뭘까?

피치의 아시아책임자 제임스 맥코맥은 "한국 은행들의 외채 상환이 대외신인도에 훼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국제금융시장에서 국내 은행들을 상대로 빠르게 자금회수가 이뤄질 경우 은행들이 외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6월말 현재 국내 은행들의 외채는 1516억 달러였다. 이 가운데 조선업체, 자산운용사와의 선물환 거래에 따라 발생한 400억∼500억 달러는 상환불능 우려가 없고, 나머지는 은행들이 갚아야 할 돈이다. 정부는 이미 은행의 외채 만기연장을 돕기 위해 1000억 달러까지 지급보증을 서주기로 한 상태다.

피치는 가파른 경기침체로 한국 은행들의 자산이 부실화될 가능성도 제기했다. 대외의존도의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경제 침체의 타격을 더욱 심각하게 받을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렸다.

외환시장에서의 달러화 매도 개입으로 외환보유액이 크게 축날 수 있다는 점도 피치는 위험요인으로 지목했다.

지난달 말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2122억 달러로 한달새 274억 달러 줄었다. 달러화 매도 개입도 있었지만, 외화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은행에 대한 외화유동성 공급을 늘린 영향이 컸다. 달러화 강세로 유로화 등 비달러화 자산의 환산액이 줄어든 것도 한몫했다. 이 가운데 외화유동성 공급분은 향후 돌려받는 것인 만큼 영구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편 미국과 영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국제통화질서(신 브레턴우즈 체제) 구축 방안을 놓고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영국계인 피치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미국의 우방인 한국을 견제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신용등급 유지를 위해 외환보유액 확충, 대외건전성 확보 등의 노력을 계속해 나가는 것 밖에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한도를 올해 10조원에서 내년 20조6000억원으로 늘리고, 이 가운데 60억달러 어치를 외화표시 외평채로 발행해 외환보유액에 넣기로 최근 결정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