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불완전판매? 불감증판매!

머니투데이 임상연 기자 2008.11.0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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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증시폭락으로 펀드 수익률이 급락하면서 최근 은행, 증권사 등 펀드 판매사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대규모 원금 손실을 본 개인투자자들이 송사를 마다하지 않고 거세게 항의하면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달 ‘우리파워인컴펀드’ 투자자 160여 명은 판매사인 우리은행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또 얼마 전에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환매가 중단된 ‘우리2스타파생상품펀드KH-3호’와 ‘KH-8호’ 투자자들이 손해 본 원금과 이자를 보상하라며 법원을 찾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판매사들의 과도한 환헤지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역외펀드 투자자들이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등 줄소송이 예고되고 있다. 이쯤 되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판매사나 운용사가 소송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소송펀드’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마저 나오고 있다.

문제는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지만 판매사나 운용사, 감독당국 등 누구 하나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판매사들은 “위험을 고지했고, 사인까지 받았다”며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쁘다. 감독당국도 “약관이나 규정위반이 아니면 책임을 묻기 힘들다”며 한 발 빼는 모습이다.



물론 대박에 사로잡혀 앞뒤 안 가리고 펀드 투자에 나선 개인투자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펀드 판매 실태를 보면 과연 판매사나 운용사, 감독당국이 약관이나 규정 따위를 변명거리로 내놓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펀드 투자가 정점에 달했던 지난해 11월, A은행 한 지점에서 벌어졌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화제가 된 모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고객들은 번호표를 들고 지점 창구 밖까지 길게 줄을 섰었다. 지점 직원들은 영업시간 내에 그 많은 펀드 가입을 처리하기 위해 고객들에게 미리 가입신청서를 나눠주고 작성하도록 했다. 이후 차례가 된 고객에게 지점 직원이 해준 것이라곤 펀드통장과 투자설명서를 내준 것뿐이었다. 그것 뿐이었다. 불완전판매를 넘어선 불감증판매. 거침없이 오르던 증시에 취해 모두가 불감증에 걸린 듯 했다.

한 번 잃은 신뢰를 되찾기란 쉽지 않다. 개인투자자들의 모래알(자금)로 쌓아 올린 펀드 시장은 말 그대로 모래성이다. 무너진 신뢰가 이대로 방치된다면 펀드 시장은 물론 동북아 금융중심지를 꿈꾸는 국내 자본시장마저 허물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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