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弗 AIG가 글로벌 금융위기에 던지는 메시지

머니투데이 유일한 기자 2008.11.0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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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관리 철저, 기존의 노하우 맹신은 금물, 신뢰 잃으면 끝장

"AIG는 매우 단순하고 기본적인 원칙에 입각한 위험관리 모델을 쓰고 있다. AIG는 매우 강력한 수익성을 갖고 있으며, 지금의 모델은 위험이 매우 낮다. AIG는 스스로의 모델을 만들고 사용한다. 모델을 외부에서 사지도 않고, 대중적으로 사용가능한 모델을 쓰지 않는다."

2007월12월5일 AIG의 투자자 미팅에서 게리 고튼이 한 말이다. 고튼은 AIG의 컨설턴트로서 1990년대 후반에 합류했고, 위험관리 모델 개발을 주도했다.
↑ 게리 고튼↑ 게리 고튼


"위험이 매우 매우 복잡하게 얽혀 변하고 있다. 위험이 궁극적으로 어디에 머무르는지 알아내기 힘들다. 동시에 여러 곳에 위험이 존재하기도 한다. 누구도 위험이 존재하는 곳을 정확히 알아내기 힘들기 때문에 금융시장 전체 기반이 오염됐다"
고튼이 2008년10월 예일대 경영대학원에서 자신의 학생들에게 한 말이다.



1년이 안되는 짧은 기간 동안 AIG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60달러 넘던 주가가 2달러 아래로 폭락하게 됐을까. 미국 최대 보험회사인 AIG는 연준(FRB)으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1400억달러 이상을 지원받았다. '달러 먹는 하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혈세가 투입될 지 모른다. 금융위기를 잡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는 미국 정부가 AIG를 포기하기는 어렵다.

두고두고 금융시장의 뇌관으로 남으면서 시장을 괴롭히고 미국인들을 속상하게 할 것이다. 대마불사의 신화를 다시 한번 증명한 AIG의 몰락은 그래서 좀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검은 10월의 마지막날 AIG의 위험관리 실패와 이로 인한 막대한 손실을 자세히 소개했다.

◇위험은 컴퓨터로 관리..인간의 지나친 맹신
고튼의 논문은 월가에서 유명하다고 한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도 가끔 인용할 정도다. 동시에 고튼은 금융상품의 위험관리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졌고, 몸소 컴퓨터 시스템에 기반한 위험관리 기법을 개발하는데 열성이었다. 급기야 그가 만든 위험관리 모델을 AIG가 채용하기에 이른다. AIG는 이를 바탕으로 4000억달러가 넘는 신용디폴스스왑(CDS)을 거래했다. 1998년쯤이었다. 위기의 싹이었다.

AIG는 그러면서 갑작스런 금융시장의 붕괴가 거대한 CDS의 가격 변화를 가져와 자신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안겨줄 지 대비하지 않았다. 동시에 고튼에게도 이를 평가해보라고 권하지 않았다. 신용경색이 본격화된 지 1년반 정도가 지난 지금 AIG는 CDS 거래를 통해 수백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세계 제1의 보험사로 명성이 자자한 AIG에게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의문은 한둘이 아니다. AIG가 위험이 높은 CDS에 대한 철저한 이해없이 대규모 사업을 벌일 수 있었을까. CDS라는 상품의 구조가 복잡하다고 해서 위험을 파악하는 게 불가능했을까. 정말로 AIG는 운명이 걸린 위험관리 문제를 컴퓨터 모델에 전적으로 의지한 것일까. 최고급 인재들은 이기간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

AIG 뿐 아니라 월가의 많은 최고경영자(CEO)들은 파생상품의 위험 측정과 관리를 컴퓨터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보험 자회사를 두고 있는 버크셔 헤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은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공식을 들고 다니는 바보들을 조심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AIG는 너무 안일했다.

고튼의 모델에 입각해 CDS를 팔던 경영진들은 "우리의 모델에 대해 매우 신뢰한다"고 했고, 일부는 "고튼의 모델이면 디폴트 위험에 따른 손실을 입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다"고 자부했다.

AIG의 CEO였던 마틴 설리번은 지난해 12월 회의에서 투자자들이 CDO 노출에 대해 우려하자 "우리의 모델은 매우 안전하다"고 말했다. 고튼은 당시 "우리가 설계한 모델에 기반하지 않는 어떤 거래도 승인되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지금 연방검사들은 이 회의에서 경영진들이 투자자들을, 외부 감사를 속였는지 조사하고 있다.
↑AIG 순이익 추이↑AIG 순이익 추이
◇이상한 AIG의 CDS 구조
AIG의 CDS는 계열사인 AIG 금융상품회사(Financial Products Corp.)에서 취급했다. 회사채, 서브프라임 모기지, 자동차 대출, 신용카드 대출 등을 기반으로한 다양한 CDS를 팔았다. 스왑을 매입한 투자자들에게 채권이 부도가 나면 보상해주겠다고 약속을 한 것이다. AIG가 판 CDS는 세가지 방향에서 고통을 주었다. 기본적으로 채권이 부도가 나면 AIG가 손실을 갚아야했다.

여기에 스왑을 사간 투자자들은 채권 가치가 하락하거나 AIG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담보를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AIG는 스왑 계약을 시가로 장부에 반영해야했다. 스왑 계약의 가치가 하락하면 상각을 해야하는 것이다. 결국 AIG는 채권 부도 비용, 담보 지급 부담, 자산 상각이라는 삼중고를 당할 수 있는 구조였다.

고튼의 모델은 이중 부도 위험 관리 부문은 비교적 선방했다. 수많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채권의 부도 위험을 계산해낸 것이다. 그러나 담보요구와 상각 분야에는 거의 고려가 없었다. AIG는 부도보다 담보 설정과 상각으로 사실상 몰락했다.

AIG는 CDS를 매각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난해 상반기까지 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판 CDS에 대해 이렇다할 헤지도 없이 벌거벗은 채 위기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쇄도하는 담보 요구, 상각
신용위기가 증폭돼 채권 가격이 급락하자 AIG는 CDS 투자자들에게 불리한 처지가 됐다. 당장 골드만삭스는 80억~90억달러의 돈을 담보로 쌓아야한다고 주장해 관철시켰다. 이는 사실상 골드만이 갖게될 대부분의 위험을 상쇄하는 규모다. 신뢰를 잃고 궁지에 몰린 AIG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많지 않았다. 정부의 구제금융 이후 투자자들의 이같은 요구는 더 거세졌고, AIG와 그 계열사는 세 차례에 걸쳐 1440억달러의 자금을 연준으로부터 빌리는 위기를 맞았다. 채권 가격이 더 하락하면 AIG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무디스에 따르면 AIG는 세계최대의 CDS 발행기관중 하나다. 2007년 전까지 스왑거래에서 발생하는 손실은 거의 없었다. 이는 지나친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채권 구조가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스왑 상품도 매우 복잡해졌는데, 이러한 변화를 인정하지 않았다. 2004년께 부채담보부증권(CDO)으로 불리는 파생채권이 나왔다. 메릴린치는 대대적으로 CDO를 팔면서 AIG의 CDS를 구입해갔다.

급기야 여러 채권을 묶은 '멀티섹터 CDO'까지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 CDO에는 100개 이상의 채권이 포함됐고, 각 채권은 수많은 모기지와 자동차 대출 등을 담보로 발행됐다. CDO의 수익률은 쉽게 말해 수 천개의 자산 가격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 고튼은 수많은 채권의 부도 가능성을 종합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었지만 역부족이었다.
↑AIG 주가 추이↑AIG 주가 추이
2007년 들어 모기지 가격이 급락하자 AIG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신용등급 불안감도 더해졌다. 골드만삭스는 AIG 채권의 CDS를 매입해 AIG와 거래한 CDS 계약의 위험을 헤지하기도 했다. 작년 11월에는 메릴린치, 소시에떼 제너럴이, 12월에는 UBS, 바클레이, 크레디 아그리꼴, 로열뱅크 오브 스코틀랜드(RBS)가 담보를 요구해 찾아갔다. 도이치뱅크 , 캐나다은행, 몬트리올은행은 담보를 요구하고 있다.

◇최악의 손실, 주가 폭락-등급 하락
올 2월 AIG는 53억달러의 4분기 손실을 공개했다. 역사상 최대 손실이었다. 스왑 가치 하락에 따른 상각 때문이었다. 5월 다시 78억달러의 분기 손실을 밝혔다. 역시 상각이 주도했다. 고튼은 와튼에서 예일로 자리를 옮겼다. 6월 설리번은 퇴출됐다. 7월말까지 AIG가 담보로 건네준 돈만 165억달러에 달했다.

9월15일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자 신용평가사들은 AIG의 등급을 내렸다. 이 여파로 AIG는 180억달러의 담보를 더 지급해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의 신뢰를 잃은 AIG 주가는 폭락을 거듭했다. 구제금융으로 파산은 면했지만 더이상 대마로 인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주 고튼은 30명의 예일대 대학원생들과 '금융시장과의 싸움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논의했다. 고튼은 하나의 섹터에서 발생한 문제가 어떻게 시장 전반의 가치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한탄했다고 한다. 고튼은 "펀더멘털의 이유는 아닌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10년전 AIG와 일을 한 고튼은 막대한 수입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AIG의 몰락과 함께 새로운 파생상품을 마구잡이로 찍어내면서 장기간 호황을 누려온 월가 금융기관들의 경쟁력도 빛을 잃어가고 있다. 위험관리라는 단순한 원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더불어 실추된 신뢰는 쉽게 만회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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