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M&A는 사기,'미네르바'도 사기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인겸 더벨 대표이사 부사장 2008.11.0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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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천자'(佛心天子)로 불릴 정도로 신심이 깊었고 불사도 많이 한 중국 양나라 무제가 달마대사를 만나 무엇이 불교의 가장 성스러운 진리인지 물었습니다. 달마는 "휑하니 비어있어 아예 성스럽다 할 것조차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무제가 다시 "그럼 제 앞에 있는 분은 누구냐"고 다그쳤습니다. 달마는 "모르겠소"라고 단호히 대답하곤 양자강을 건너 위나라로 가버렸습니다.

당나라 시대의 선승 조주화상이 말했습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만물, 이 모두가 지극한 도의 모습이다. 절대 그 자체가 부처라는 따위의 수작은 꼴사나울 뿐이다. 절대 그 자체가 선이라니 얼굴을 들 수 없구나."



선불교의 진수 '벽암록'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부처가 대단히 특별한 게 아니고, 진리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우리가 뻔히 잘 알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건 진리가 아니며, 사기라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세계 금융위기의 주범 신용부도스와프(CDS)만큼 어렵고 복잡한 게 있을까요. 거의 괴물 수준이지요. 심지어 이 상품의 잔액이 60조 달러인지, 80조 달러인지, 아니면 100조 달러를 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세계적 투자은행들은 괴물과도 같은 이 상품으로 사기를 쳤고, 결과는 지금 너무 참담하지요.



한동안 아이슬란드와 두바이를 배우자는 목소리가 높았지요. 저희언론도 앞장섰습니다. 금융허브와 개방의 모델로 자본자유화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한국도 이들처럼 해야 한다는 논리였지요.

금융위기가 시작되고 보니 제일 먼저 취약점을 드러낸 게 1인당 국내총생산이 세계 3위를 기록한 아이슬란드였습니다. 세계 최고, 세계 최초, 세계 최대로 유명한 상상력의 두바이도 해외자금이 이탈하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이웃 아부다비의 지원에 기대야 하는 상황입니다.

상상력도, 세계 최초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빚이 아닌 자기 돈으로 해야 한다는 것, 금융허브도 중요하지만 제조업이 뒷받침되지 않는 금융허브는 거품이고 사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두바이와 아이슬란드가 가르쳐주는 단순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어쩌지요. 두바이와 아이슬란드를 복사하고 있는 인천 송도, 새만금, 태안기업도시 등 말입니다.

신기술을 개발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을 생산하고, 이익을 늘리기보다 금융기관들에서 돈을 차입해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게 능사라는 논리가 우리 기업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워크아웃을 신청하니 마니해서 증시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는 C&그룹을 비롯, 금호·STX·두산그룹 등이 대표적인 경우고 한화가 막판에 가세했지요.

시장 전문가들을 만나보면 부실화가 연초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C&그룹이나 일부 중견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는 설령 해결되지 않더라도 별게 아니라는 중론입니다. 문제는 금호·STX·두산그룹 중 혹시 어려움에 빠지는 기업이 나오는 건 아닌지 아주 불안하다는 고백입니다.

특히 한 기업이 많이 걱정된다고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미 통화스와프로 국가가 부도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좋아하기엔 이른 것 같습니다.

CDS도, 두바이도, M&A도 왠지 어렵고 복잡하지요. 어렵고 복잡한 게 또 있습니다. 온라인의 사이버 논객, '고구마 파는 늙은이' '미네르바' 입니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환율 폭등을 예상한 것까지는 좋은데 요즘 그의 주장들을 보면 오버를 해도 한참 했더군요. 경제기자로서 그의 말이 먹히는 현실에 자괴감을 감출 수 없지만 드리는 말씀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예측해 몇 년간 선지자처럼 행세하던 스티브 마빈이라는 외국인 애널리스트가 생각납니다. 그의 독설은 '미네르바'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던 그도 한국증시가 지수 2000을 향해 가자 소리 소문 없이 떠나고 말았지요.

미네르바는 지혜를 의미하고, 노인도 지혜를 상징하는 단어지요. 그런데 진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지혜롭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양나라 무제가 달마대사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따져 묻자 달마는 단호히 "모르겠소"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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