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래은행 제도, 사요나라"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2008.11.0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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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함께 쓰는 우산' (2) 일본 금융에서 배운다

일본은 90년대 장기 침체 과정에서 은행과 기업간 제휴형태를 바꾸는 방식으로 공존에 성공, 세계 각국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1곳의 주거래은행이 해당 기업과 거래하는 다른 은행의 여신까지 좌우하는 '주거래은행' 제도를 과감히 탈피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거품 붕괴 이후 일본의 변화와 관련해선 여러 가지 분석이 있으나 가장 신뢰할 만한 것으로 '간접금융시장 확대'를 꼽는다. 은행들은 1개 기업에 많은 자금을 빌려주기보다 신디케이트론, 스트럭처드·컨버트파이낸스, 신용파생,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등 다양한 간접금융상품 방식으로 리스크를 분산하기 시작했다. 특정 거래처에 집중된 대출은 결국 치명적인 타격으로 돌아온다는 경험에서였다.



은행들은 특정 기업에 대출을 집중하는 주거래은행 개념 대신 해당 기업의 금융자문(CFO) 역할을 하면서 다양한 자금조달 채널을 구축하도록 돕는 재무관리자(CFO)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일본형 투자은행(IB)의 모습이기도 했다.

1999년과 2002년을 비교할 때 신디케이트론 조성액은 약 3조엔에서 11조엔으로, CLO 조성액은 2조엔에서 5조엔가량으로 증가했다. 시장의 질적 변화도 컸다. 예전에는 거래관계가 있는 금융기관들만 참여하는 클럽딜 성격이 짙었는데 이제는 기존 거래 금융기관 이외 곳들에도 문호가 열린 개방형으로 전환되면서 효율성이 높아졌다.



대상 기업도 대기업 중심에서 중견·중소기업으로 확대됐다. 2001년 32개 금융기관은 JSLA(Japan Syndication & Loan Trading Association)를 설립, 대출계약 조건이나 대출정보 관리를 표준화하는 성과를 올렸다.

모집형 CLO시장 활성화도 일본이 거둔 성과 중 하나다. 잠재력은 충분하나 자금력이 모자란 중소기업들이 풀(pool)을 구성하고, 은행들이 무보증 대출로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은행들이 기업의 담보능력보다는 현금흐름, 사업성을 분석하는 기법을 개선하는 선순환고리가 만들어졌다.

이같은 일련의 변화는 은행과 기업이 상생을 모색하면서 나온 결과지만 정부가 수행한 역할도 상당했다. 일본 금융청은 부실화된 중소기업을 살리고 신규 업체의 자금지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은행들의 역할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보고 각종 제도 변화를 이끌었다. 특히 금융기관들이 담보·보증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데서 벗어나 기업의 현금흐름(캐시플로)을 기본으로 대출할 수 있도록 심사 및 재무제한조항과 신용평점모형 등을 적극 활용할 것을 요청했다.
중소기업들에는 자금조달 다양화를 유도하는 한편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중소기업의 CLO 활성화에 쏟은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지자체는 지역내 유망 중소기업들을 1곳에 묶은 CLO(지자체 CLO)를 발행토록 하면서 금융기관들이 이를 유동화할 때는 신용보증협회를 통해 신용을 보강해줬다.

이렇게 되자 은행들은 안심하고 자금을 투입하게 됐고 나아가 우량기업들을 자체적으로 모아 모집형 CLO를 발행하기도 했다. 미국의 CLO와 다른 점은 기존 대출채권을 증권화하는 것이 아니라 증권화를 전제로 새로운 대출채권을 모집해 리스크를 분산하고 자금순환 효율을 올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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