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와 경기침체 4대 시나리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2008.11.07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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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청계광장

지난 9월 중순 이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그 결과 실물경기 침체도 가시화 되고 있다. 금융 시스템과 경제의 펀더멘탈(fundamental)이 약한 나라들은 잇달아 위기 상황에 빠졌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경제의 기초구조는 괜찮지만 금융시스템이 취약해서다. 여기다 10여년 전 외환 위기의 경험도 시장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난 한달여간 국내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은 빠르게 추락했다. 물론 10월30일 한미간의 통화스와프 체결로 최악의 상황을 면한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도 형성되고는 있다. 그러나 외환 위기의 가능성이 조금 낮아졌을 뿐 이 조치가 현재 상황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아니다. 우리 경제의 운명은 여전히 미국 경제를 중심으로 한 세계 경제가 어떻게 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미국과 세계 경제의 미래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 정도다.



현재의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이번 사건의 진앙지가 현대 미국식 자본주의의 총아였던 월스트리트와 파생상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미래를 점치는 데 과거만큼 쓸 만한 소재도 없다. 지난 세기와 이번 세기 들어 미국과 세계 경제사의 변고(變故)를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당장 4가지의 전례가 떠오른다. 우리와 세계 경제의 미래와 관련한 4가지 시나리오다.

첫째, 단순한 금융 불안 시나리오다. 1987년 미국의 블랙먼데이나 1990년대 초반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 벌어졌던 금융위기가 반복되는 시나리오다. 미국의 블랙먼데이는 금융시스템의 취약점이 일거에 드러나고 경기 회복 기대가 무산되면서 하루 만에 주가가 23% 가까이 폭락했던 사건이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주요 선진국 상업은행들이 개발도상국에 빌려준 돈을 떼일 위기에 처했다. 두 사건 모두 큰 충격이었지만 일과성(一過性)에 그쳤다. 훗날 금융계에서는 이런 일들을 두고 ‘비정상적 긴장 상태’(unusual strains)라고 불렀다. 불행하게도 현재 상황은 이런 단계를 넘어섰다.



둘째, 금융 불안 후 경기침체(recession) 시나리오다. 2000년대 들어서서 정보통신(IT) 거품이 붕괴되자마자 벌어졌던 일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IT혁명 혹은 신경제 붐으로 많은 자본과 인력이 이 분야에 쏠렸다. 그러나 새천년에 접어들어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자 일부 금융 시스템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관련 산업 분야의 침체도 불가피해졌다. 이런 상황이 2~3년간 계속됐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 될 경우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의 경제는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점차 회복될 것이다.

셋째, 장기불황(depression) 시나리오다. 1970년대와 같은 장기불황이 엄습하는 경우다. 물론 당시 불황의 주요 원인은 유가 급등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오히려 다가올 경기 침체로 유가가 지난 3개월여 만에 반토막이 난 상황이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파괴력을 감안하면 현재 상황은 당시의 오일쇼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번 금융위기로 지난 30여년간의 세계 경제 장기 호황은 막을 내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 경우라면 2010년 이후에도 경기 회복을 장담하기가 어려워진다.

넷째, 대공황(Great Depression) 시나리오다. 1920년대 말 미국에서 시작돼 1930년대 전 세계로 퍼졌던 공황 상태가 재연되는 상황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당시의 경험을 되살려보면 이런 시나리오가 실제로 벌어지려면 두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자산 디플레이션이 심화되고 세계 각국이 보호무역주의 경향을 강화하는 것이다.


현재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해 소비와 경제를 위축시키는 자산 디플레이션은 일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당시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더욱이 1930년대처럼 서로 보복 관세를 매기는 보호무역주의의 분위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국제 공조가 활발해지고 있다.

결국 현재로서는 금융 불안 후 경기침체나 장기 불황 시나리오가 가장 그럴 듯한 시나리오다. 이 가운데 어떤 시나리오로 갈지는 실물 경기가 얼마나 나빠질 것이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세계 각국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경기 침체를 방어하느냐에 따라 각 나라가 맞게 될 시나리오는 제각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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