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비율 규제완화' 돈가뭄 기업에 단비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2008.10.2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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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함께 쓰는 우산' (1)기업을 살려야 은행도 산다

세계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실물경제에도 여파가 미치는 모습이다. 기업들은 "내수시장 침체와 수출 감소에 근근이 버텨왔는데, 최근 자금경색으로 어려움이 커졌다"고 호소한다. 기업어음과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고 은행의 대출여력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사정이 급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각종 지표를 보면 기업들의 자금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우선 국가의 대외신인도를 나타내는 외평채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이 동남아보다 높아졌다. 국채가 이러니 기업의 자금조달은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더욱 심각하다. 기업은행경제연구소가 직원수 5~300명가량인 중소기업 3070여곳을 대상으로 지난달 실시한 조사는 실물경제의 위기가 눈앞에 다가왔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올 4/4분기 중소기업들의 판매대금 현금결제 전망 기업경기조사(BSI) 지수는 94로 전분기 91보다 개선됐으나 전년 동 분기(97)보다는 악화됐다. 3/4분기 판매대금 현금결제 실적 BSI는 83으로 2분기 85보다 하락했으며, 2006년 4분기 이후 가장 악화된 것이다. 판매대금 매출채권 현금화 전망도 94를 기록, 전년 동기 97보다 내려갔다.



기업인들의 심리도 상당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금사정이 매우 양호하다'고 답한 업체는 전무했으며, '양호하다'고 답한 곳들의 비중도 올 1월 4.6%에서 3.7%로 하락했다. 반면 '곤란', 혹은 '매우 곤란하다'고 답한 곳은 각각 38.0%, 5.6%로 나타났다. 영세 소기업들은 상황이 더욱 안좋다.

'양호하다'고 답한 업체와 '곤란하다'고 답한 곳의 비율을 차감한 수치(9월말)를 올 1월과 비교하면 △소기업 -33.4%→42.9% △영세 소기업 -41.3%→-50.0% △중기업 -9.5%→-18.2% 등으로 각각 악화됐다.

특히 8월중 중소기업 대출은 은행들의 리스크 관리 강화와 계절적 비수기가 맞물리면서 증가폭이 크게 축소됐다. 중소기업 대출 순증액은 7월 5조5000억원에서 8월 1조8000억원으로 급감했다. 중소기업들은 자금을 풀지 않는 은행들만 바라보는 처지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흑자도산하는 기업과 금융부실이 급속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은행들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채권발행 등 자금조달시장이 경색되면서 기업들
을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크게 저하된 탓이다. 무리한 여신정책을 고수하다간 자칫 외환위기 시절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도 은행들을 움츠리게 하고 있다.

은행들은 그럼에도 '자금경색→연체 증가→은행 건전성 악화'의 악순환고리가 형성되는 것만큼은 막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실물경제가 무너지면 금융산업도 온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금융권에선 은행들의 기업 지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정책적 지원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위기를 감안하지 않은 법규가 많아 은행들이 쉽사리 돈을 풀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컨대 최근 이슈가 되는 유동성 비율 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유동성 비율은 은행들이 보유한 '만기 3개월 이내 자산'을 '3개월 이내 부채'로 나눈 것으로 감독규정에 따라 10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지난 8월말 현재 은행권의 원화유동성 비율은 107.7%로 기준을 살짝 웃돈다. 은행 관계자는 "유동성 비율에서 문제는 최근 부동자산이 급증하면서 자산과 부채의 자금순환주기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관련 규제가 시장변화를 반영하지 못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예전에는 고객들이 1년 이상 예금에 돈을 예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 2~3년간 투자시장이 확대되면서 은행조차 안정적인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워졌고 결국 자금수급의 톱니바퀴가 벌어졌다는 설명이다. 예금은 들어왔다가도 금방 빠져나가는 반면 대출은 최소 1년 이상이어서 생기는 불일치다. 이는 올해 초까지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최근 회사채시장이 기능을 상실해 은행들의 자금확보가 어려워지면서 부담감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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