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 파문' 유인촌 장관을 위한 변명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08.10.26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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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성공학]44번째… '래리 플린트'

1.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에게는 반대파의 지독한 공격에도 자제심을 잃지 않고 유머로 잘 대응한 일화가 여럿 있다.

한 여성 정치인이 의회에서 처칠과 논쟁을 벌이다 "내가 당신의 아내라면 당신의 찻잔에 독을 넣겠어요"라는 독설을 퍼부었다. 이에 대한 처칠의 노련한 응수. "내가 만약 당신의 남편이라면 주저없이 그 독이 든 잔을 마시겠습니다."

처칠은 자신을 사사건건 반대하는 또 다른 의원과 맞닥뜨렸다. 그는 점잖게 대꾸했다. “존경하는 의원님, 의원님으로부터 우연히 가끔씩이라도 진실이 흘러나올 때엔 절대 반박하지 않겠습니다.”



처칠이 존경받는 것은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위기를 잘 극복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정치적 반대파의 공격도 존중했고, 품위와 웃음을 잃지 않고 대응하는 도량이 넓은 모습을 보였다.

'욕설 파문' 유인촌 장관을 위한 변명


2. 언론의 자유를 이야기 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거명되는 영화가 밀로스 포먼이 감독한 '래리 플린트'이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래리 플린트가 발행하는 포르노 잡지 '허슬러'가 유명 종교인인 제리 폴웰의 눈밖에 난다. 폴웰의 공격을 받던 플린트는 풍자만화 등을 통해 그를 근친상간을 일삼는 인물이라고 비방한다.

물론 만화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라는 단서를 붙여뒀지만, 화가 난 폴웰은 플린트에게 재판을 걸고 1,2심에서는 승소한다. 하지만, 결국 연방대법원은 플린트의 손을 들어준다.

여러가지로 폴웰에게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대법원은 한 유명인사의 명예에 관한 권리보다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수정헌법 1조'에 더 중점을 뒀다. 이 대목에서 플린트의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나 같은 쓰레기 3등 시민이 자유를 보호받는다면, 당연히 당신들같은 1등, 2등 시민들은 저절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힘 있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떠 받치는 진정한 힘이라는 게 세간의 평가다. 미국 고위 관료들에게도 이 같은 인식은 일반적이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해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이런 내용의 연설을 했다. "의회와 언론이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걸고 비판하지만, 이들은 미국 국민의 자유를 가장 확실하게 보장하는 기관이다. 언론을 적으로 대하는 것은 자멸을 초래할 뿐이다."

3. "비난은 사람이 유명하게 되었을 때, 대중에게 바쳐야 하는 세금이다." 작가 조너단 스위프트의 말이다. 사실 유명인이나 힘이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세상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게 돼 있다. 물론 그런 질시가 옳다는 건 아니지만, 영향력이나 권력이 있을수록 그만큼 세상의 견제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24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여야 의원들의 정쟁으로 정회가 됐을 때 자신을 촬영하는 기자들에게 "사진 찍지마. XX 찍지마", "성질이 뻗쳐서 정말, XX 찍지마"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로 인해 유 장관은 세상 사람들이 퍼붓는 비난의 뭇매를 맞고 있다.

물론 단초는 야당인 민주당 소속의 이종걸 의원이 제공했다. 그가 먼저 "장관, 차관, 공공기관 낙하산 대기자들은 이명박 휘하이자 졸개들"이라는 막말을 퍼부었다. 이 역시도 분명 옳은 언사가 아니다.

일반적인 양비론을 펼치고 싶지도 않고, 더군다나 팩트가 분명하게 확인되지도 않은 '언론장악 의혹'이라는 정파적 다툼에도 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정부 여당을 견제해야 하는 야당의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 나라의 문화 전반과 언론 관련 정책을 책임지는 위치로 볼 때 유 장관이 국회에서 보여준 언행은 정말로 실망스럽다.

특히 조금 확대해서 해석해보면, 유 장관의 욕설은 언론에 대한 그의 속내에 담긴 평소 인식이 무의식적으로 새어 나온 발언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그로서는 일부 억울한 측면이 있겠으나, 그에 대한 세상의 비난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겠다.

4, 한편으론 유인촌 장관이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는 드라마 '전원일기'등을 통해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배우다. 극단을 운영하는 예술인이었고, 교수로서도 존경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려왔다.

만약 거기서 머물렀다면, 정치판에 넘어와 장관직이라는 무거운 자리를 받지 않았다면, 그는 현재 아주 행복한 삶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빗발치는 비난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서 말이다.

신영복 선생의 저서 '강의'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났다. 길지만 소개해본다.

"나는 그 '자리'가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70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자기 힘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거짓이나 위선으로 채우거나 아첨과 함량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되겠지요.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부나 높은 자리도 좋지만, 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행복도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깜냥과 그릇을 잘 살펴, 무리하지 않고 그칠 줄 아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가장 기분좋게 술을 마시기 위해서는 '약간 알딸딸하다 싶을 때'나 '조금 아쉽다 싶을 때' 집으로 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때론 가지고 누리는 것이 그러지 않은 것만도 못 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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