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전략]얼마나 많은 피를 원하나

머니투데이 홍재문 기자 2008.10.2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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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40개월만에 1000선 붕괴

코스피지수 1000선이 마침내 무너졌다. 하루 낙폭이 110포인트에 달했다.
2000선에서 100포인트 하락은 -5%지만 1000선에서의 100포인트는 -10%로 곱절이 된다.

지난해 11월 기록한 사상최고치(2085.45)에서 -55% 주저앉았다. 그러나 달러기준으로 보면 낙폭이 -71.3%에 이른다.



그러나 시장은 아직도 멀었다는 식이다. 코스피증시에 사흘 연속 사이드카가 발동됐고 코스닥시장에선 연이틀 서킷브레이커가 걸릴 정도의 패닉이었다.
코스피시장도 오후 2시20분까지라는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지 않았을 뿐이다.

[사진=이명근 기자][사진=이명근 기자]


하루에 56조원이 증발되고 상장종목 2개중 1개가 하한가를 맞을 정도였다면 시장이라고 볼 수 없는 일이다.
지수선물 시장에서는 하한가 매도잔량이 8000계약을 넘었다. 무조건 팔아치우겠다는 건데 앞으로 얼마나 더 떨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렇듯 미친듯이 팔아치우는가.



무엇이 이런 몰락을 이끌어냈을까. 신흥시장에서의 자본도피로 해석되고 있는데 실제 외국인 매물은 크지 않다.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이 8일 연속 주식 순매도 행진을 이어갔지만 이날 순매도는 2781억원에 불과했다.

지난 6∼7월 33일 연속 순매도의 기록에 비하면 미약한 규모다. 연기금이 3597억원을 순매수했고 외국인은 6034계약이 선물을 순매수했다. 개인이 795억원을 순매도하고 증권이 2676계약의 선물을 순매도한 게 이런 대폭락을 초래했다고 볼 수 없다.
대만증시가 이틀 연속 연저점을 경신했지만 외국인의 주식 순매도 규모는 8억2800만대만달러(원화 273억원 상당)에 불과했다.

외국인의 투매가 아니라는 뜻이며 주가가 겁을 먹고 그냥 떨어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매수호가를 계속 낮추는 가운데 매도세가 공세를 취하면 적은 규모로도 주가 하락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424원으로 마감되며 이틀 연속 연중 최고 종가를 기록했지만 지난 9일 기록한 장중 연고점(1485원)을 넘지 못했다.
지수 1000선 붕괴의 참사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 폭등세가 야기되지 않았다는 것은 작금의 사태가 외환위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주가가 무차별 난타당하고 있는 것은 자산버블 시대의 보복으로 보기에도 심하다. 밸류에이션상 1300선 이하는 이미 저평가 국면이다. 1150선 밑의 극단적인 저평가 상태에서도 시총 상위종목이 하한가로 추락하는 것은 부도사태를 직감하고 있다는 뜻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 일이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투자자의 생각이 어디까지 가 있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분양 아파트를 잔뜩 들고 있는 건설업체 몇개가 부도를 맞고 그 여파로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대출 부실이 커지면서 저축은행도 사지에 몰릴 것이라는 점을 그리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대기업과 은행까지 망하지는 않겠지만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서 고용불안과 임금삭감 등이 줄을 이을 것이 불보듯 뻔한 얘기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주가를 한껏 밀어내고 있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미국발 금융위기가 진정돼도 실물위기의 후폭풍이 닥쳐올 것이라는 점까지 기정사실로 삼고 있다.
중국 성장률이 7%선으로 떨어진다면 한국 경제가 중국발 회오리에까지 휩싸이며 작동불능 상태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가세하고 있다.



양경식 하나대투증권 투자전략실장은 "안개등까지 켰지만 불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속"이라고 현상을 비유하면서 "이러한 때는 운전을 중단하고 차를 세워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투신사(자산운용사)는 현재 이같이 행동하고 있다. 환매가 크지는 않지만 시작된 이상 환매분보다 더 많은 금액의 주식을 매도하면서 현금보유 비율을 높이고 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펀드런에 대비하고 생존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비난을 따질 여유가 없다.

엔/달러 환율은 93엔까지 폭락하고 있다. 캐리트레이드 통화인 엔화 초강세는 투자를 접고 있는 글로벌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확실한 예다.



종말론이 지구를 감싸고 있다. 사상 초유의 자산 역버블 사태를 맞아 주식은 물론 원유와 금값 등 상품가격도 끝모를 추락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국 부동산 시장까지 몰락한다면 해외발 악재가 그쳐도 코스피증시 하강 모멘텀이 배가될 것이라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돈다.

최악이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피를 원하는 것일까.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초단기간에 폭락세가 꼬리를 물면서 오히려 매수기회를 타진하는 부류도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과 주식에 물린 돈도 엄청나지만 국채나 예금 등 안전자산에서 대기하고 있는 자금도 천문학적이다.
공포를 키워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간 뒤에는 분명 스마트머니가 준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살아 남는 자는 수퍼버블의 대박장을 한껏 향유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있을 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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