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최대 위협은 '외신'?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10.2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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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한 경제- 카스테라]

2004년말 런던, 영국계 자산운용사 슈로더투신운용 본사에서 해외시장 담당 임원을 만난 적이 있다. 그해 우리나라의 핫이슈였던 '북핵' 문제에 대해 얼마나 우려하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걱정 안 한다. 더 이상 신문 1면(Front page)에 안 나오지 않느냐".

영국인인 그가 한국 신문을 볼 리는 없고, 자국 신문 또는 주요 외신 1면에 '북핵' 관련 내용이 나오는지 여부가 판단 기준이라는 얘기다. 뒤집어 보면, 만약 신문 1면에 '북핵' 관련한 기사가 나온다면 한국에 대한 투자위험 요인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사람인지라 외국에 대한 정보를 직접 경험이나 지인 등 1차 경로로만 전달받을 수는 없다. 언론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강대국이 아닌 한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베트남에 대한 정보를 주로 어떻게 얻는지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외신들의 한국 관련 기사가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주는 영향이 절대적인 이유다.

외신 보도가 또 한번 우리나라를 뒤집어놨다. 세계 최고의 경제권위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이 개발도상국에 긴급자금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며 한국, 멕시코, 브라질, 동유럽 등의 나라를 지원 대상으로 염두해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한국이 또 IMF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면서 24일 코스피지수가 1000선을 깨고 939로 111포인트 주저앉는데 일조했다.

이에 대해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이 주식시장 마감 직후 긴급브리핑을 통해 "우리나라는 IMF의 지원을 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고, WSJ은 "한국 관료들이 각종 어려움이 나타남에도 경제가 탄탄하다고 주장한다"고 재반박하는 사태로 비화됐다.

우리나라가 외신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경우는 처음이 아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4일자 신문에 거의 한면을 할애하며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집중 보도했다. FT는 지난 6일에도 "한국은 아시아에서 금융위기의 감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라고 썼고, 지난 8월13일에는 칼럼을 통해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 상황을 맞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 같은 외신 보도들이 한국 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각을 더욱 비관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른바 ‘미디어 맬러디'(Media malady,언론의 폐해) 효과다.

때론 외신의 기사 한줄이 국가부도 사태의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외환위기가 그 예다. 당시 외국인의 자금이탈이 가속화된 것은 블룸버그통신이 "한국의 가용 외환보유액이 20억달러에 불과하다"(1997년 11월5일)고 보도한 직후였다. 한국 정부가 IMF 구제금융 각서에 서명(12월3일)하기까지 그로부터 한달도 걸리지 않았다.

한 베테랑급 외신기자는 "한국은 선진국들의 '이너서클'(Inner circle)에 속해있지 않아 국제 언론계의 보호는 받지 못하면서도 경제 규모는 커서 속칭 '기사거리'가 되는 나라"라며 "불과 10년 전에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라는 점도 한국이 외신의 '단골메뉴'가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국제금융시장은 어떤 기사도 '투자의 재료' 또는 '자금회수의 계기'로 삼을 준비가 돼 있다. 주요 외신의 기사 한줄이 한국을 '제2의 외환위기'까지도 몰고 갈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정부가 가장 크게 신경써야 할 일은 만약에 대비해 주요 외신들에게 미리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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