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포인트]신흥시장에서의 자본도피

머니투데이 오승주 기자 2008.10.2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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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다우지수 반등도 '약효' 없어

글로벌 금융위기가 신흥시장위기로 옮겨붙으며 자본도피(capital flight)가 줄을 잇고 있다. 외국인들이 가격불문, 주식, 채권 등 종류불문하고 자금을 빼가면서 증시는 폭락이고 환율은 급등이다. 신흥시장국 디폴트 우려가 계속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도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들 주식순매도와 원/달러 환율의 걷잡을 수 없는 급등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이같은 불안으로 24일에는 장중 1000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미국 다우지수가 반등을 했지만 한국에는 '약효'가 없는 상태다. 이같은 상황은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외환위기(IMF) 당시처럼 급속한 외화유출로 인해 '국가부도'의 공포가 재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신흥시장에 투입된 자금이 미국이나 안전자산으로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국내증시와 금융시장은 다시 한번 고통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코스피지수는 24일 장중 1000선이 붕괴됐다. 2005년 6월말 이후 3년 4개월만에 '세자릿수 시대'가 다시 열렸다.

[사진=이명근 기자][사진=이명근 기자]


일본 닛케이지수도 4% 이상 급락하는 등 미국 다우지수가 2% 이상 반등했지만 코스피를 비롯한 아시아주요증시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제는 미국증시도 소용없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아시아를 비롯한 신흥시장에서 자본도피(capital flight)가 본격 시작됐다는 뜻이다.


전세계 신흥시장에 뿌려놨던 자금이 신용위기 이후 미국 달러 등 안전자산으로 둥지를 옮기는 '엑소더스'가 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김성노 KB증권 스트래티지스트는 "ADR과 이격도, 풋/콜 Ratio 등 여러가지 '초과매도국면'을 나타내는 지표들에도 불구하고 지수가 추가 하락하는 것은 '이머징국가들의 외환위기 확산 우려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코스피의 20일 이격도는 1997년 12월3일 이후 최저로 하락했다는 게 김 연구원의 설명이다. 외환위기 초입 무렵이던 1997년 12월2일 20일 이격도는 77.78%였고, 그해 12월 3일에는 79.35%까지 확대됐다.

올해와 비교하면 지난 23일 20일 이격도는 79.92%이다. 11년전인 97년 12월3일은 IMF와 구제금융 합의가 이뤄진 날이다. 현재 코스피 이격도가 당시와 맞먹는 수준까지 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예전에 국내로 유입됐던 글로벌자산이 달러와 같은 안전자산으로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코스피의 위기'라기보다는 '한국의 위기'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시점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한국의 5년 만기 국채의 CDS프리미엄은 지난 22일 기준 488.3bp로 5거래일 연속 사상최고치 행진을 이어갔다. 올해 8월 말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CDS 스프레드는 부도 가능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쓰인다.

그만큼 외국에서는 한국도 '국가부도'의 위험을 안은 국가로 여기는 심각한 상황이다. CDS스프레드 뿐만이 아니다. 외국계펀드들이 국내에서 자금을 빼나가는 속도도 가파르다.

이머징포트폴리오닷컴(EPFR)에 따르면 10월 들어 지난 15일까지 한국관련펀드에서 185억6200만달러가 유출됐다. 지난 5월만 해도 75억4300만달러의 순유입이 있었지만, 8월 이후 줄곧 순유출을 기록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특히 취약하다고 보기 때문에 자금을 급속히 유출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만 자본도피가 실시된 것은 아니다. 이미 국가파산위기에 휩싸인 아르헨티나와 아이슬란드를 비롯해 러시아와 브라질 등에서도 대규모이 외국인 자본이 빠져나가거나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다.

러시아 국채의 CDS프리미엄은 1005bp까지 치솟았고, 아르헨티나(3217bp)와 아이슬란드(1067bp)도 '가공할 만한' 수준이다.



MSCI 신흥시장 지수는 23일 기준으로 4.3%급락했다. 4년만에 최저치다. 미국채와 신흥시장 국채스프레드 평균은 8.5%포인트다. 이것도 6년만에 최고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헝가리와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등이 IMF에 구제금융의 손을 벌린데 이어 아르헨티나와 러시아의 국가부도설도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아르헨티나 국채 CDS 스프레드는 4000bp에 달하고 있다. 러시아 CDS도 1000bp를 넘어섰다. S&P는 러시아의 국가등급을 부정적으로 강등했다.



이같은 신흥시장의 위기에 더불어 한국에서도 외국인 자금이 무섭게 빠져나가고 있다.

반면 미국은 오히려 위기가 진정되는 모습이다. 다우존스는 저가매수가 밀려들면서 2% 이상 반등했다. 10월 들어 하락률이 19.9%로 같은 기간 코스피 하락률 31.8%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리보금리도 하락세다. 하루짜리 리보는 23일 1.11% 내렸다. 1개월물 리보 3.27%, 3개월물 3.54%로 8일 연속 하락세다. VIX는 23일 69.95%로 이틀 연속 상승했다. 그러나 이미 70%선은 사상최고치 수준이다. 여전히 높기는 하지만 선진 글로벌 금융시장은 안정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달러도 강세다. 엔화에 대해서는 약세지만 유로에 대해선 1유로당 1.2815으로 강한 모습을 보인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 볼때 자본은 이머징시장에서 미국 달러 등 안전자산으로 도피하는 가운데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시장이 후폭풍을 맞을 가능성이 점증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9,220원 ▲120 +1.32%) 리서치센터장은 "선진국에서 이머징마켓 쪽으로 신용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외환에 취약한 한국으로서는 여차하면 정말 어려운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센터장은 "대책의 강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며 "은행채 불안은 빨리 해결을 봐야하며 한국의 금융시장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세계에 알려야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센터장은 "외환보유액 등 '외환문제가 안전하다'고만 정부가 외칠 게 아니라 시장이 믿을만한 수치를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이머징시장의 금융위기에 한국도 휩쓸릴 공산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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