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공포의 펀드런'이 증시 대폭락 부른다

머니투데이 박성희 기자 2008.10.2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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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겪는 위기에 대한 불안감 증폭…국내 투자자들 '학습효과'

미국인들의 공포의 펀드런(펀드 대량 환매)이 도무지 끝을 알기 힘든 힘들 정도의 글로벌 증시 폭락을 낳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인들이 대공황이후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겪는 엄청난 위기인데다 빚으로 형성했던 자산가치가 폭락하면서 차입부담을 줄이기 위해 현금화가 쉬운 펀드에 묻지마식 환매가 쏟아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투자자의 환매압박에 떠밀려 글로벌 펀드들이 잇따라 현금화가 가능한 곳이면 어디든지 주식을 팔고 있다. 위기국면에서 외국인의 한국탈출러시도 이의 연장에 있으며 최근 우리나라에서 보여지듯 외국계 증권사가 공격적인 매도리포트를 쏟아내며 또다른 희생양 만들기에 바쁜 인상을 주는 것도 이같은 속사정과 관계가 크다는 관측이다.



이머징포트폴리오닷컴(EPFR)에 따르면 10월들어 지난 15일까지 주로 선진국에 투자하는 펀드로 미국인이 즐겨투자하는 인터내셔널펀드에선 126억5300만달러가 유출, 전세계 펀드중 가장 유출폭이 컸다. 9월엔 149억 5500만달러가 유출됐고 올들어선 333억5600만달러가 순유출됐다.

 한국관련 펀드에서도 무섭게 자금이 나갔다. 9월 191억7900만달러가 유출된데 이어 10월들어 185억6200만달러가 유출됐다. 하반기에는 인터내셔널 펀드 등 글로벌 펀드에서 자금이 집중유출되고 있다. 상반기 집중유출됐다가 하반기 유출이 뜸해진 미국펀드도 10월들어 다시 대량 유출로 돌아섰다. 10월들어 15일까지 미국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95억7000만달러다. 올들어선 모두 135억6800만달러에 달한다.



美 '공포의 펀드런'이 증시 대폭락 부른다


저축대부조합 부도사태, 롱텀캐피털 파산, 9.11테러 등 과거 주가 하락기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던 미국인들이 펀드 환매에 나서는 건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외국계 A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미국인들은 생애 처음으로 이같은 금융위기를 겪는 탓에 거의 '아노미' 상태"라며 "이같은 투자자 분위기에 당장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본사에선 글로벌 지사 전체를 보수적이고 빡빡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이나 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사에서 '우리가 경험해 봐서 안다. 고비만 넘으면 잘 해결된다'라고 말하면 미국이나 유럽 관계자들은 우리가 지나치게 '나이브'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인들이 펀드를 환매하는 데는 워낙 저축을 안해 차입에 대한 내성이 약한 탓도 크다. 호황기에서 미국인의 저축률은 거의 0였으므로 그간 축적한 재산은 대부분 빚으로 쌓아올린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산값이 떨어지면 차입금 상환을 위해 있는 자산이라도 급매로 처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모기지(부동산 담보대출)로 주택을 구매한 상태. 그러나 집값이 폭락하면서 현재 미국인 6명 중 1명은 집값보다 모기지 잔액이 더 높은 실정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전체 가계자산 중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말 현재 67%에 이른다. 이 가운데 펀드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5.5%로 영국(4.8%), 일본(3.1%) 등 여타 선진국보다 높다.

최근 외국계 증권사를 중심으로 국내 증시 매도 리포트가 쏟아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B 운용사 관계자는 "잇단 매도 리포트를 '한국 때리기'로 보는 건 단견"이라며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이들이 신흥시장 중 가장 거래가 활발한 한국에 대해 매도를 외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나 러시아처럼 정부가 맘대로 증시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나라에 대해선 매도 리포트를 쓸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한편 코스피지수가 1000선을 시험하면서 국내 펀드 시장도 대량 환매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C 운용사 관계자는 "국내 투자자들이 불안해 하는 건 사실이지만 IMF를 겪은 '학습효과' 덕에 세계에서 가장 튼튼하다"며 "손실폭이 그다지 많지 않은 투자자들이 펀드 환매를 하지만 '펀드런'까지 거론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일부에선 한국인의 금융자산 가운데 펀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해 선진시장과 같이 금융시장에 타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2007년 현재 한국인의 가계자산에서 금융자산의 비중은 14%로 낮은 수준인 데다 이 중 펀드투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1.4%에 불과하다.

한편 교보증권은 23일 보고서를 통해 "최근 3년간 투신의 지수대별 매수 동향을 보면 자금의 23%가 1300대에 매수돼 1100~1200대에서 -7~-15%의 손실을, 3년 내 투자자들은 평균 27%의 손실을 보고 있다"며 "이는 손절 요인을 넘긴 손실률로 대형 악재가 돌출하지 않는 한 펀드런 사태까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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