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의 기술' 고수와 하수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10.2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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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한 경제- 카스테라]

'관치의 기술' 고수와 하수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부처 국장들과 만난 자리였다. 사회자가 참석자를 차례로 소개했다.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 차례가 되자 소개말이 이랬다. "'관치'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신 분입니다". 올초 재정경제부 차관까지 지낸 김석동 농협경제연구소장(사진)의 얘기다.

그가 '관치의 화신'으로 각인된 계기는 2003년 4월 카드채 사태 해결을 위해 나온 '4.3 대책'. 카드채 부실로 투신권에 환매중단 사태가 벌어지자 투신사 지원을 위해 은행별로 총 3조8000억원의 브릿지론을 할당한 것이다.



서울 명동은행회관에서 대책이 발표된 직후 한 기자가 물었다. "이거 관치(금융) 아닌가요?" 그 때 김석동 당시 감독정책1국장의 대답이 그 유명한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였다.

김 소장이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전 금감위 부위원장) 이후 최고의 '관치 전문가'로 불리는 이유는 '개입주의적' 성향이 강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기술'도 있어서다. 사실 노하우와 인맥, 배짱이 없으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관치'다. 금융시장의 속성상 하수들의 설익은 '관치'는 욕만 먹고 효과도 없다.



시끄러운 일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금융사들이 따를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게 '관치의 기술'이다. 예컨대 정부가 무작정 금리를 내리라고 한다고 손해를 무릅쓰고 내리는 은행은 어디에도 없다.

김 소장이 쓰는 방법은 이런 식이다. 그가 재무부 이재국의 금리계장으로 있을 때였다. 단기금리가 15% 이상으로 치솟자 윗선에서 해결하라고 난리가 났다.

김 소장은 통신사에 전화를 걸어 "15%를 초과하는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려는 금융사는 당국에 용도를 보고토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사가 나가자 금리는 즉시 15% 아래로 떨어졌다. 원천적으로 금리 15% 이상의 자금조달을 막지는 않되 금융사 스스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목적의 자금조달은 자제하게 만든 것이다.


이밖에 김 소장이 주로 쓴 방법이 '창구지도'와 '휴대폰 통화'다. 창구지도가 실무자를 상대로 한 것이라면 휴대폰 통화는 금융사의 임원 또는 최고경영자(CEO)급을 상대로 한 것이다. 상대가 거부하면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내놨다. 개인적 인맥도 활용했다. 해당 금융사는 이를 갈지만 정책은 효과를 봤다.

김 소장은 공개적 조치보다는 금융사와의 비공개적 협의를 선호했다. 공개적 조치의 메시지가 시장에서 잘못 해석될 가능성을 막기 위함이다.

가격변수에 대한 일괄적인 통제도 가급적 피했다. 개별적 접촉을 통해 탄력적으로 조율하는 쪽을 선호했다. 일괄적인 통제가 낳는 부작용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이른바 '관치금융' 정책들에서는 이런 '노하우'가 보이지 않는다.

감독당국은 최근 회사채펀드의 가입을 장려해야 한다며 회사채펀드의 총보수를 0.4%(40bp)에 맞추도록 자산운용사에 통보했다. 가격에 대한 일괄적 통제다. 운용원가가 높은 운용사든, 낮은 운용사든 마찬가지다. 원가가 안 맞는 운용사는 회사채펀드 설정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회사채펀드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정책의 취지와 반대다.

지난 6일에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은행장들을 불러 놓고 "외화유동성 확보를 위해 외화자산 매각에 발벗고 나서라"고 촉구했다. 은행의 자구노력을 강조하려는 취지였지만, 시장의 반응은 반대였다. "정부에 지원 여력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면서 이날 원/달러 환율은 46원이나 뛰었고, 코스피지수는 61포인트 떨어졌다. 공개적으로 할 일이 아니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타개하려면 '관치'도 필요하다. '파멸'보다는 나으니까. 대신 이왕이면 좀 더 세련된 '기술'을 구사하는게 정부와 시장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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