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같이 벌지는 못했지만!"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2008.10.23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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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에세이]부도(富道) 10단, 내놓음에 대해

"천사같이 벌지는 못했지만!"


부도(富道) 10단. 10단은 과연 무엇인가? '10'이란 숫자는 사실상 존재치 않는 '0'과 통하는 숫자다.

1에서 9까지가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10은 실수(實數)인 동시에 허수개념이다. '가득 참(영 盈)'인 동시에 '빔 (공 空)'이다. 그래서 완성인 동시에 새로운 출발이다.

바둑에서도 1단에서 9단까지만 존재한다. 최고 단위가 '입신(入神)'이라 불리는 9단이다. 그러나 신의 경지를 넘어서 10단에 올라서는 경우도 있다. '10단전'우승자다. 그에게는 통상적으로 '10단'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붙여준다.



초단이 단박에 10단에 오를 수도 있는 흥미진진한 승부가 10단전이다. 고서에 의하면 바둑 1단은 수졸(守拙)이다. 겨우 제 한 몸은 지킬 수 있게 된 단계다. 2단은 약우(若愚). 겉으로는 어리석게 보이지만 그 나름의 지모를 갖춘 단계다.

3단은 투력(鬪力). 필요 전투력을 갖춘 단계다. 4단은 소교(小巧). 비로소 소박하게나마 기교를 부릴 수 있는 단계다. 5단은 용지(用智). 작은 손해쯤은 감수하는 지혜를 갖춘 단계다. 6단은 통유(通幽).



본질에 접근하고 승부의 요체도 터득한 단계다. 7단은 구체(具體). 능히 기술을 터득했을 뿐만 아니라 어느 때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단계다. 8단은 좌조(坐照). 가만히 앉아서 우주의 섭리를 내다 볼 수 있는 경지다.

◆10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가득 참'인 동시에 '빔'

지조(志操)시인 주선(酒仙) 조지훈에 의하면 "주도(酒道)에도 유단(有段)"이라 했다. 주도 1단은 애주(愛酒). 술을 맛보는 주도(酒徒)단계다. 2단은 기주(嗜酒). 술의 진미에 홀린 주객(酒客). 3단은 탐주(耽酒). 술의 진경을 체득한 주호(酒豪). 4단은 폭주(暴酒). 주도를 수련하는 주광(酒狂).


5단은 장주(長酒). 주도 삼매에 든 주선(酒仙). 6단은 석주(惜酒).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주현(酒賢). 7단은 낙주(樂酒).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주성(酒聖). 8단은 관주(關酒).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마실 수 없는 주종(酒宗). 9단은 폐주(廢酒) 또는 열반주(涅槃酒).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세상으로 떠나게 된 단계다.

지훈은 9단을 왜 인격화시켜 놓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그를 흠모하는 마음에서 "술을 먹어 귀신"이 되었으니 9단을 주신(酒神) 또는 주불(酒佛)정도로 완성시켜보면 어떨까 싶다.



부도에도 대미(大尾)를 찍자. 부도 10단은 사(捨)다! 부(富)를 내놓음이다. 내놓음과 동시에 새로 얻음이다. 완성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다. 돈으로부터 떠남과 동시에 뜻을 향함이다.

"기부(寄附)보다는 희사(喜捨)해야 한다. 말 그대로 기쁘게 버리는 정신이다." 경주 최부자 가문의 장손인 경주 최씨 중앙종친회 명예회장 최염(75)씨의 주장이다. 경주 최부자 가문은 12대 300년의 부를 누린 집안이다. 사회사업과 독립운동에 큰돈을 보태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칭송을 받고 있다.

◆"자녀에게 많은 유산을 남기는 것은 독(毒)!"



얼마 전 한의학계 원로 류근철교수가 KAIST에 578억원 어치의 부동산과 골동품을 기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는 "578억원은 잠시 관리했던 돈일뿐"이라며 멋진 노후를 만끽하고 있다. 그야말로 '희사'가 아닌가 싶다.

한국CEO연구포럼과 머니투데이가 주최한 '제1회 한국CEO그랑프리'에서 '아름다운 CEO상'을 수상한 박종규 KSS해운 고문의 사례도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살아있는 표본이다. 그는 장기기증 내용까지 담은 유언장을 공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혔다. "우리 기업인들은 항상 채우려고만 합니다. 경제는 흐름입니다. 따라서 비울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제2회 때 '아름다운 CEO상'을 수상한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이사장의 끊임없는 재산의 사회 환원도 주목된다. 3회 때의 '아름다운 CEO'수상자인 이종환 관정교육재단 이사장의 술회도 6000억 원 거액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거인답다. "천사같이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모은 돈은 천사같이 써야지!"



"자녀에게 많은 유산을 남기는 것은 독이다." 빌 게이츠와 워렌버핏의 가치관이다. 중국의 청쿵그룹 리카싱 회장은 100억달러를 쾌척하고 인텔 창업자인 고든 무어도 70억 달러를 기부했다. 이러한 기부는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도록 지탱하는 사회 안전망이다. 그것이 바로 '창조적 자본주의'다. (한국CEO연구포럼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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