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시험대에 놓인 한국 경제

최희갑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2008.10.23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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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시험대에 놓인 한국 경제


 최근 우리 경제는 1960년대 이래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험대에 놓여있다. 우선 세계경제의 버팀목이 되어야 할 선진 제국이 동시에 극도의 금융불안을 겪는 상황이 놀랍다.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세계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 이래 가장 큰 금융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 대공황 이후 다양한 형태의 위기가 세계경제를 괴롭혔지만, 모두 국지적 형태를 취했다. 더욱이 이번 금융위기는 오일쇼크에 이어 곧바로 발현되었기에 그 강도는 1970~80년대의 오일쇼크를 쉽게 압도한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경기침체라는 여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무역 상대국 대부분이 극심한 경기침체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 역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수출에 전력으로 매달렸고, 그 결과 대외개방도는 높아질대로 높아져 있다.



한가지 위안이 있다면 선진 제국이 기축통화의 유동성 공급이나 경기부양에 있어 적극적인 공조체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공황 당시 세계경제를 침몰 직전으로 몰아갔던 자기 파괴적 무역 보복이나 평가절하 행태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아직 모를 일이다. 상당기간 지속될 경기침체 속에서 각국이 자국의 산업계나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얼마나 설득력있게 제어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우리 경제나 정책당국은 시험을 잘 보고 있는 것일까? 위기가 현재진행형이므로 가채점만이 가능한 상황이다. 우선 시험에 대한 준비상태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기업 부문은 열심히 준비한 모습이 확연하지만, 은행부문은 외환유동성 부족이라는 과거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했지만 반복되는 실패는 누가 보아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정부의 경우 신용평가사, 언론 등 국제금융의 주요 참여자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많이 보여 조기 대응에 한계를 보였지만, 외환보유고를 기준으로 보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특히 외환보유고가 과다하고 수익률이 불충분하다는 집요한 압력 속에서 리더십을 잘 발휘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모든 시험이 그렇듯이 사전 준비뿐만 아니라 순발력도 중요하다. 국민경제가 위기에 휩싸일 때 순발력은 온전히 정책당국의 몫이 된다. 임금, 휘발유 가격, 분양가 등 일부 가격은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정상적 자원배분기능을 상실하고 환율, 금리 등 다른 가격들은 경제주체들이 생존과 안전을 우선시함에 따라 극단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유지하되 극단적인 시장 개입도 병행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시장개입이 한번 발생하면 가격기능이 현저히 약화되고 또 다른 개입에 대한 기대가 증폭된다. 개입은 하되 그에 따른 패널티는 명확히 하고 또 다른 위기를 낳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금융권의 경우 임금논쟁 보다는 외환유동성 부족을 야기하지 않는 제도적 장치가 더 긴요하다. 자본금 요건을 강화해 외환유동성이 감소할 경우 외환표시 필요자본금이 동시에 높아지도록 하는 조치도 고려해볼 만하다. 시스템 리스크와는 거리가 먼 특정 업종을 대상으로 한 정책은 재고가 필요하다. 사기업이 자기 판단으로 매입한 원자재(토지) 뿐만 아니라 그 제품(아파트)까지 국가가 매입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그래도 개입이 필요하다면 개별기업과 업종 차원의 철저한 자구책을 제시하게 한 뒤 개입의 강도를 결정해야 한다.
 
시장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는 우리의 특수한 여건도 정부를 어렵게 하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규제를 완화하면 가격기구가 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높아진다. 기존 제도를 완화하는데 있어서도 완급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세계 각국은 이번 위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 새로운 방향으로의 제도 개편을 도모하고 있다. 제도 변화의 세계적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지혜가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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