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세계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 이래 가장 큰 금융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 대공황 이후 다양한 형태의 위기가 세계경제를 괴롭혔지만, 모두 국지적 형태를 취했다. 더욱이 이번 금융위기는 오일쇼크에 이어 곧바로 발현되었기에 그 강도는 1970~80년대의 오일쇼크를 쉽게 압도한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경기침체라는 여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무역 상대국 대부분이 극심한 경기침체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 역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수출에 전력으로 매달렸고, 그 결과 대외개방도는 높아질대로 높아져 있다.
우리 경제나 정책당국은 시험을 잘 보고 있는 것일까? 위기가 현재진행형이므로 가채점만이 가능한 상황이다. 우선 시험에 대한 준비상태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기업 부문은 열심히 준비한 모습이 확연하지만, 은행부문은 외환유동성 부족이라는 과거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했지만 반복되는 실패는 누가 보아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정부의 경우 신용평가사, 언론 등 국제금융의 주요 참여자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많이 보여 조기 대응에 한계를 보였지만, 외환보유고를 기준으로 보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특히 외환보유고가 과다하고 수익률이 불충분하다는 집요한 압력 속에서 리더십을 잘 발휘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모든 시험이 그렇듯이 사전 준비뿐만 아니라 순발력도 중요하다. 국민경제가 위기에 휩싸일 때 순발력은 온전히 정책당국의 몫이 된다. 임금, 휘발유 가격, 분양가 등 일부 가격은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정상적 자원배분기능을 상실하고 환율, 금리 등 다른 가격들은 경제주체들이 생존과 안전을 우선시함에 따라 극단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유지하되 극단적인 시장 개입도 병행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시장개입이 한번 발생하면 가격기능이 현저히 약화되고 또 다른 개입에 대한 기대가 증폭된다. 개입은 하되 그에 따른 패널티는 명확히 하고 또 다른 위기를 낳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시장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는 우리의 특수한 여건도 정부를 어렵게 하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규제를 완화하면 가격기구가 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높아진다. 기존 제도를 완화하는데 있어서도 완급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세계 각국은 이번 위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 새로운 방향으로의 제도 개편을 도모하고 있다. 제도 변화의 세계적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지혜가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