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채 사달라" 읍소하는 은행에 무슨 일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2008.10.22 14:52
글자크기
은행의 원화 유동성 부족의 중심에는 은행채가 있다. 은행채는 대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들이 발행한 채권. 은행들은 창구지점을 통한 예금과 은행채나 양도성 예금증서(CD) 등 시장성 수신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그런데 자금조달의 한 축인 은행채 시장이 고사 직전이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은행채 수급이 사실상 붕괴된 탓이다. 결국 은행들은 연말까지 갚아야 할 빚, 은행채 만기도래분 25조원 가량을 매입해 달라고 한국은행에 요청해 놓은 상태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전문가들은 은행채 과다 발행의 원죄가 은행에 있다고 지적한다. 은행들은 지난해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이면서 예금에서 펀드로 자금이 이탈하자 돈 가뭄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수년째 지속된 자산확대 경쟁으로 주택담보·중소기업대출에 열을 올리던 시점이다.

창구를 통해 들어오던 예적금이 주식시장으로 빠져나가자 대출 전쟁을 벌이던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은행채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주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이를 매입했고, 과다 발행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9월 15일 리먼의 파산신청으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로 우려가 현실화됐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국내 금융사는 물론 외국계 은행 지점들이 보유한 은행채를 시장에 대거 내놓기 시작했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자금 부족과 초단기화를 이유로 은행채 매입을 꺼리면서 은행채의 차환발행도 사실상 중단됐다. 이제는 국고채보다 3%포인트나 금리를 얹어주겠다고 해도 은행의 신용리스크를 우려해 사려는 곳이 없다.

은행채 금리가 상승하자 단기채인 CD 금리도 덩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3개월물 CD 금리는 3개월 전 연 5.54%에서 21일 연 6.14%로 뛰었다. 이로 인해 CD 금리에 연동되는 주택담보·신용·전세자금 등 대출자가 유탄을 맞았다. 가계대출 금리를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CD 금리를 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은행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달러 뿐 아니라 원화 가뭄에 시달리던 은행들은 결국 고금리 정기예금 특판으로 자금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낮췄지만, 예금 수신금리가 오히려 7%대로 높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주식시장이 힘을 잃는 상황에 고금리 특판예금이 판매되자 시중자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화 부족을 메꾸기에는 이것 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특판예금 가입자들에게 고금리를 주기 위해서는 조달금리 비용을 더 치뤄야 한다. 은행들이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벌이는 것으로 은행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보다 못한 금융감독원은 지난 20일 시중은행 자금 담당 부행장을 불러 특판예금 판매에 제동을 걸었다. 은행에 충분한 원화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으니 고금리 예금에 목숨을 걸지 말라는 얘기였다. 국민연금이 10조원 어치 은행채를 사주기로 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하지만 은행은 그것으론 부족하다며 한은이 직접 은행채를 사달라고 읍소하고 있다. 원화 유동성 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은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역시 한은이 은행채를 환매조건부채권(RP) 방식 공개조작 대상에 포함시켜 은행에 자금을 공급할 것을 요청했다. 은행채를 담보로 단기로 자금을 대출해주면 시장에서 은행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효과가 생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