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괘씸한데…" 정부, 대규모 지원 '속앓이'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8.10.20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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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엔 (정부가) 시장에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괘씸한 마음은 지울 수 없다."(기획재정부 고위간부)

 "은행이 엄살을 부려서 피같은 외환보유액을 받아내 그 돈으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오버나이트(하루 만기)로 돈장사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청와대 관계자)

 정부가 결국 불안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은행 대외채무에 대해 총 1000억달러까지 지급보증을 해주고 달러 기근 해소를 위해 300억달러의 외화유동성도 추가로 공급키로 했다.



이같은 고강도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은행권을 바라보는 정부와 청와대의 시선이 탐탁치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금융권 지원이라는 국제적 공조에 발을 맞추면서도 속은 쓰린 표정이다.

 현재의 외환시장 불안 및 유동성 위기를 초래한 원죄는 은행권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황이 급박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국민 세금으로 '퍼붓기식' 지원에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불만은 은행권이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최근 달러 기근의 근본 원인이 미국발 금융위기에 있다고 하지만 은행들의 경쟁적인 외화차입과 선물환 매입 행태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는게 정부 판단이다.

은행들의 외화대출 실적은 2001년 말 447억달러에서 지난 6월 말 889억달러로 두 배 가까이 늘었고 환율 급등과 외화대출 만기연장에 따른 외화수요 폭증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은행들은 또 지난해 조선·플랜트 업체의 선물환을 경쟁적으로 매입해 주면서 달러수요 급증에 따른 환율급등을 불러왔다.

 정부가 결국엔 '소방수'로 나서 지원대책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환헤지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 문제도 은행들이 수수료 장사를 위해 기업들에 상품의 위험성을 무시하고 무차별적으로 판매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실물경제까지 위협하는 건설사 유동성 위기도 은행들이 과도하게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부동산 관련 대출을 확대하면서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자구노력을 게을리하는 은행에는 패널티(벌칙) 금리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도 했으나 이는 '엄포'에 그치고 말았다. 은행들은 결과적으로 특별한 자기희생 없이 정부의 도움으로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정부로서도 지난 19일 발표한 금융시장 안정대책과 같이 전체 은행에 대한 일괄 지원이 아니라 도덕적 해이 여부에 따른 은행별 차별적 지원을 내심 선호한다. 하지만 은행이 하루짜리 단기 외화차입으로 연명하는 현실에서 그간의 잘잘못을 따지기에는 상황이 너무 긴박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은행 대외채무에 대해 지급보증을 해주는 문제도 정부는 당초 거부감이 컸지만 글로벌 추세에 떠밀려 입장을 바꿔야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지급보증을 하면서 은행에서 보증료를 받는 것 외에 달리 자구노력을 압박할 방법은 없다"며 "은행들이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하는데 외형 확장 등에 치중하느라 리스크 관리 등에 너무 소홀했던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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