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특정다수 대상 '묻지마 흉기난동' 왜?

머니투데이 전예진 기자 2008.10.2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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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일본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 현장↑ 지난 6월 일본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 현장


#1 "세상 살기 싫다"

20일 오전 8시 40분 쯤 서울 강남구 논현동 D고시원에서 정모씨(31)가 불을 지른 뒤 흉기난동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씨는 거주하던 고시원 3층 책상에 인화성 액체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이것도 모자라 3층 입구에서 화재를 피해 도망 나오는 사람들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정씨가 휘두른 흉기에 맞아 크게 다쳤다. 현재 여성 6명이 사망했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정씨는 현재 무직인 상태지만 한때 이 고시원 1층 음식점에서 주차직원으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경찰에 붙잡힌 뒤 '세상 살기 싫다'는 말을 했으나 정확한 범행 동기와 배경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2. 또 "살기 싫었다"

지난 7월 22일 오후 1시 10분 쯤 동해시청 민원실에 최모씨(36)가 난입했다. 최씨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공무원이냐"고 소리를 지르며 흉기를 휘둘렀다.

최씨는 흉기로 9급 공무원 남모씨(37)의 가슴과 머리를 찔러 숨지게했고, 이를 말리던 이모씨(38)의 팔목을 수차례 흉기로 내리쳐 부상을 입혔다.


최씨는 "살기 힘들고 살기도 싫었다. 큰 건물이 시청이어서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해 아무나 살해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살기 싫어

'묻지마 살인' 현상은 올해 6월 일본에서 불거져나왔다. 지난 6월 8일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보행자들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용의자인 가토 도모히로는 아키하바라 앞 대로로 2t 트럭을 들이밀고 행인들을 친 뒤 차에서 내려 순식간에 등산용 칼을 휘둘러 7명을 숨지게 하고 10여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이후 국내에도 최근 4달 사이 3건의 '묻지마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8월 15일에는 오후 4시 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모 초등학교 앞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범행을 한 무직자 김모씨(25)는 "'누군가 죽이고 싶다'는 생각에 길 가던 생수배달업자 오모(41)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발생한 세 사건의 공통점은 '아무 이유 없이' 살인이 이뤄졌다는 점, 용의자가 모두 무직이라는 점, '날 밝은' 오전과 오후 시간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게다가 초등학교 앞, 고시원, 시청 등 사람이 많은 곳에서 버젓이 범행이 이루어져 시민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 '묻지마 살인' 도대체 왜?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대형 살인사건을 일으키기전 외톨이 성향과 폭력적 행동으로 그 조짐을 보인다.

동해시청 민원실 살인사건을 저지른 최씨는 2003년 대기업에서 퇴사한 뒤 가족과 연락을 끊고 6개월 전부터 동해에서 막일을 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2년 전 부산의 전자제품 대리점에 이유 없이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른 적이 있다.

홍제동 살인사건의 용의자 김씨는 2002년 경기 성남의 한 전문대에 입학했으나 피해망상성 정신분열증으로 1년도 안 돼 학교를 그만두고 주로 집에서만 생활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할머니의 손발을 묶거나, 부모에게 흉기를 겨누고, 여동생의 목에 상처를 내는 등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정신병원에 두 차례 입원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는 애인이나 친구를 사귀지 않는 등 대인관계가 전혀 없었고, 휴대전화도 없으며 PC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건강상담 클리닉 더 윤의 윤선옥 원장은 "'묻지마 살인'은 현실적이고 극단적 어려움으로 고립된 상황에 처해 절박한 심정을 어떻게든 표출하려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이어 "남을 해코지하고 재산피해를 냈지만 어쨌든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분노와 화를 표출하려고 한 것"이라며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함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징벌을 가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충동적으로 '묻지마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서 항상 정신적 이상이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며 "스트레스 많이 받아 우울증으로 발전됐거나, 반사회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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