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지급보증, '유동성가뭄에 단비되나'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2008.10.1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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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모럴해저드 논란에도 은행대외채무 보증키로 결단

정부가 은행권 대외채무에 대해 내년 6월말까지 총 1000억달러 규모의 지급보증을 실시키로 한 것은 그만큼 국내 은행들의 외화유동성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외화유동성 부족 문제가 원화 유동성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상존해 있다는 점도 이번 조치와 연관이 있다.

◇은행 대외채무보증..'은행 붕괴 막자'= 지급보증은 국내 금융기관이 외국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경우 정부가 대신 나서서 상환해 주겠다는 약속이다. 현 상황에서 채무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지원대책으로 꼽힌다. 민간의 채무를 정부가 직접 보증한다는 것은 심각한 위기 상황이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한 결정이다.



문제는 다른 나라 정부들이 잇따라 정부보증을 발표하고 나섰다는데 있다. 국제 자금시장에서 자금을 확보하려는 욕구는 어느 나라나 똑같다. 국제 금융시장이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정부보증 여부는 해외자금 조달의 '가부'를 결정할 정도로 민감한 변수가 돼 버렸다. 우리나라 역시 '국제공조'라는 명목으로 은행의 대외채무 보증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국내은행들의 외화차입 어려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 은행들은 해외 자금시장에서 높은 조달비용만 감당한다면 해외 자금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9월 리먼 사태 이후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국제 자금시장에서 외국환평형기금채권 10년물의 가산금리는 지난해 말 0.98%에서 지난 14일 3.32%로 치솟았다. 장기 외화자금 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셈이다. 만기 하루짜리 외화차입인 고금리의 오버나이트 거래로 연명해 오고 있는 은행들은 '더 이상 못 견디겠다'며 정부지원을 요구했다.



실제로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지난 13일 "정부 지급보증이 없는 은행간 자금 거래시장에 돈이 전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다른 나라가 다 지급보증을 하는데 우리만 하지 않는다면 한국계 은행들은 단기 달러자금을 빌리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이 때문이다.

◇원화유동성..'안심할 수 없다'= 현재 금융권에서는 원화 유동성 문제가 과거 외환위기 당시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전 세계의 신용경색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국내 기업들의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부도율이 높아지면서 대출채권을 보유한 은행들의 부실비율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은행들이 대출을 조이면 기업의 부도율이 더욱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국내 금융권의 부실화라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은행들은 현재 원화자금 조달에도 고전하고 있다. 양도성예금증서(CD)와 은행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자 고금리 특판예금 등을 통해 수신활동에 힘쓰는 형국이다. 채권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현상이다.

돈이 궁해진 은행들은 이미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크게 줄이고 있다. 지난 1~7월 평균 5조9000억원에 달했던 은행권의 중기대출은 9월 2조9000억원으로 급감했을 정도다. 지난 7월 87.4%에 달했던 시중은행의 중기대출 비중은 9월 말 62.1%까지 떨어졌다. 반면 중기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 1.0%에서 9월말 1.7%(추정치)까지 치솟았다.

일단 이번 한은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국채 직매입 및 통안증권 중도상환 등의 조치로 은행들의 원화유동성 부담은 다소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RP조절 목적이 아닌 유동성 확대차원에서 정부의 국고채를 적극 사들이게 되면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은행들의 자금조달 비용도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연 얼마나 중소기업들의 자금난 해소에 일조할 수 있을지 여부다. 기업은행이 정부의 현물출자를 통해 추가적인 대출여력을 확보했지만, 다른 은행들의 자금사정이 당장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위험에 태생적으로 보수적인 은행들이 자금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에 자금을 충분히 공급할지 여부도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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