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 공포' 강남도 떤다

머니투데이 송복규 기자 2008.10.20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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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3억 집이 10억대로… 대출이자는 눈덩이

지난 2006년말 서울 강남구 대치동 E아파트를 13억여원에 구입한 신승식씨(가명·47)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어렵게 집을 샀는데 집값이 계속 떨어지더니 최근 10억원대로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대출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금리가 뛰면서 지난해 3250만원이었던 연간 이자는 올들어 3950만원으로 700만원이나 늘었다.

신씨는 "자고나면 집값이 수천만원씩 오르는 통에 무작정 집을 구입했는데 2년만에 집값이 3억원 가까이 떨어졌다"며 "이러다 시세 차익은 커녕 이자 한푼 못 건지고 집값이 무너지는건 아닌지 두렵다"고 토로했다.



부동산 시장에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국내 실물경기가 침체되면서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던 부동산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간 부동산 가격 하락이 지속되고 소비 부진, 기업 도산 등 복합불황으로 치닫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집주인들을 불안감에 빠뜨리고 있다.



특히 집값 최고점인 2006년을 전후해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한 사람들의 속은 까맣게 타고 있다. 집값 하락에 대한 실망과 갈수록 커지는 대출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해 급기야 손해를 보고 매물을 처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06년 경기 용인시 성복동 L아파트를 8억여원에 산 노재용씨(가명·38)는 최근 집을 내놨다. 아파트 가격이 2억원 가까이 빠지자 아침 저녁으로 아내의 타박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씨는 "집값이 마냥 오를것만 같아 고집을 부려 아파트를 샀는데 돌이켜보니 상투에 매물을 잡았다"며 "손실이 크지만 더 늦기 전에 아파트를 처분하고 싶다"고 말했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샀다가 경매 처분되는 경우도 많다. 일부 물건은 금융권의 담보대출금보다 싼 값에 처분돼 디플레이션 현실화 우려를 낳고 있다.

A씨가 지난해초 제2금융권에서 집값의 80%(11억여원)를 빌려 구입한 대치동 W아파트는 1년6개월만에 경매시장에 나왔다. 금융사가 설정한 이 아파트의 저당금액은 대출금의 130%인 14억여원. 하지만 이 물건은 2차례나 주인을 찾지 못해 8억9600만원에 3차 경매가 진행될 예정이다.

2006년 B씨가 8억원에 매입한 경기 성남시 금곡동 D아파트는 지난 6월 5억5000여만원에 경매 처분됐다. 이는 돈을 빌려준 제2금융권이 설정한 저당금보다 7000여만원 낮은 값이다.

신규 분양아파트 계약자들도 아파트값 하락에 마음이 편치 않다. 건설사에 계약을 해지해달라는 요구도 늘고 있다.

지난해 경기 용인의 한 아파트를 분양받은 유진희씨(가명·34)씨는 "아파트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너무 비싸 입주후 얼마나 가격이 빠질지 몰라 불안하다"며 "계약금은 아깝지만 지금이라도 발을 빼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부지역의 가격거품이 빠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급격한 집값 하락은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집값 하락 공포가 확산되면 주택 투매로 이어져 본격적인 자산 디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연구소장은 "부동산시장 절대법칙이었던 '강남불패'가 깨진데 이어 아파트값 심리적 지지선까지 붕괴되면서 집주인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시장 침체가 지속되면 외환위기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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