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의 '한국 때리기' 3가지 이유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10.1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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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주력산업 국제금융업 이해 대변
- 취재원인 이코노미스트들 비관적 전망
- 정부의 관계개선 노력 부족


"왜 이렇게 우리나라를 걱정하는 기사를 계속 싣고 있는지 모르겠다.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떤 의도인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



14일 정부과천청사 기획재정부 기자실. 최종구 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이 분통을 터트렸다.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14일자 신문에 한면 가득 실은 '가라앉는 느낌(Sinking feeling)' 제하의 한국 관련 기사 때문이었다.

FT는 이 기사에서 한국의 △단기외채 △가계부채 △예대율(예수금 대비 대출금 비율) △경상수지 등을 일일이 거론하며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FT의 '한국 때리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일에는 "한국은 아시아에서 금융위기의 감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라고 보도했고, 지난 8월13일에는 칼럼을 통해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 상황을 맞았다"고 썼다. 이밖에도 사례는 숱하다.

주요 외신들 중에서도 FT의 한국 경제 비판은 유독 심하다. 한 재정부 관계자는 "뭔가 악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했다. FT가 한국에 대해 부정적 보도로 일관하는 이유를 3가지로 나눠 살펴본다.

첫째 영국계 경제지인 FT는 영국의 핵심산업인 국제금융 업계의 이해에 충실할 수 밖에 없다. 외국자본의 자유로운 투자를 가로막는 국가에는 비판적인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한국에서 '반(反) 외자 정서'의 결과로 비칠 수 있는 사건들이 잇따른 것이 한국이 FT의 타깃이 된 주된 이유다.


지난 2005년 우리나라에서 상장사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게 될 경우 자금출처를 밝히도록 한 제도가 신설되자 FT는 외국자본의 투자를 저해하는 조치로 보고 '정신분열증 환자', '경제국수주의' 등의 표현을 쓰며 비판했다.

2006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차익에 대한 과세 문제가 논란이 됐을 때에도 "한국은 투자자들에게 들어가는 것보다 나오는 것이 더 어렵다"고 비꼬았다. 2003∼2004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소버린자산운용(현 소버린글로벌)이 당시 SK㈜의 경영권를 놓고 분쟁을 벌일 때 국내여론이 '반 소버린' 쪽으로 모아진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2006년 영국계 자산운용사 헤르메스에 대해 한국 검찰이 주가조작 혐의로 수사(무죄 확정)를 벌이자 집중 비판한 것에서는 자국 금융사에 대한 FT의 애정이 묻어난다. 최근 영국계 은행 HSBC의 외환은행 인수 시도를 놓고 정부가 판단을 미루면서 결국 인수 포기로 이어지게 한 것도 FT의 정서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취재원의 영향도 크다. FT 역시 언론인 만큼 취재원들의 의견이 논조에 큰 영향을 미친다. FT의 논조가 한국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것은 이들이 주로 취재원으로 삼는 런던 또는 홍콩에 근거를 둔 영국 등 외국계 금융사 이코노미스트들의 한국에 대한 시각이 비관적임을 방증한다.

금융위기를 맞아 달러화 확보를 위해 한국 자산을 팔고 있는 외국계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그에 대한 '정당화 논리'가 필요하고, FT는 그 논리를 전파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주식시장의 외국인 순매도가 이를 보여준다.

셋째 과거 군사정권 때 정부의 정통성을 문제삼는 외신들과 한국 정부 사이에 관계가 틀어진 뒤 그 잔재가 아직까지 일부 남아있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FT 등 영국계 외신에 대해서는 정부의 관계 개선 노력이 미진했다는 지적이다.

한 베테랑급 외신기자는 "군사정권 당시에는 한국 정부와 관계가 좋은 외신이 거의 없었다"며 "그런데 그 후에도 관계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오히려 김영삼 정부 때 외신과 정부의 관계가 가장 나빴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역대 정부들이 미국계 외신들은 신경써서 챙긴 반면 FT, 더 타임스, BBS 등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영국계 외신들에 대해서는 다소 소홀했던 면이 있다"며 "정부가 스스로 이들 외신과의 접촉을 강화하고 입장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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